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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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생각] “제발, 차를 훔쳐주세요”

2024-02-19 (월) 임형빈 / 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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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통하여 본 우크라이나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감동의 실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벌써 2시간, 그는 거리에 서있는 빨간 차 한 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발이 묶여있다. 폭탄은 여기저기서 터지고 가족과 함께 방공호에 피신해있던 그는 상황이 악화되자 키이우를 떠나고자 마음먹었다. 하지만 차량도, 휘발유도 구하기에 어려웠다. 그때 눈에 띈 것이 엉망이 된 도로에 서있는 빨간 차 한 대였다. 시동장치에 열쇠가 꽂혀있고 기름도 가득 들어있었다. 마치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처럼 말이다. 지켜보고 있던 그는 결심한다. 이대로는 러시아의 폭탄에 가족 모두가 몰살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2시간 후에도 차량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차를 훔쳐 가족과 떠났다.

무사히 키이우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차를 훔쳐 타고 가는 내내 죄책감에서 시달려야 했다. 그 차를 훔친 탓에 누군가 키이우를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차를 뒤진 끝에 글로브 박스에서 차 주인의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미안합니다. 내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 차를 훔쳤어요.” 전화를 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했다. 차 주인의 첫마디는 뜻밖에도 “하나님 감사합니다.”였다. 차주는 “걱정마세요. 내게는 차가 4대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그 중 한 대인 지프차로 이미 탈출했습니다.”라고 안심시키고 이렇게 덧붙였다. “나머지 차는 기름을 채우고 열쇠를 꽂은 채로 각각 다른 장소에 세워뒀습니다. 글로브 박스에 내 전화번호를 남겼고요. 나머지 차량들에서 연락이 왔어요. 곧 평화가 올 거에요.”

차 주인은 누군가 차를 훔쳐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차를 훔쳐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아주기를 그래서 전쟁 없는 세상을 다시 만나기를 바란 것이다.

이 사연은 우크라이나 전직 외교관인 욜렉산드러세크바가 지난해 5월 빨간 차량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차를 훔친 이가 누구인지 차량 주인이 누구인지 그들이 여전히 생존해있는지 아무것도 확인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름 모르는 우크라이나의 차주 이야기는 희망을 품게 한다. 인간은 어리석어서 21세기에 또 죽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하지만 그렇게 절망 속에서도 세상에는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반드시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은 영웅들이 있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옥 같은 도시 곳곳에 기름을 채운 차들을 세워둔 그 우크라이나 시민 같은 사람들이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는 한, 인류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 같다.

<임형빈 / 한미충효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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