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전쟁 바이러스’는 창궐하고 있는데…

2024-01-29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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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테러로 발발한 가자 전쟁이 넉 달 째 이어지고 있다. 그 불똥은 홍해로 튀었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서방의 상선을 마구잡이로 공격해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 미국과 영국이 나섰다. 다국적 함대를 구성, 호주, 캐나다, 네덜란드, 바레인 등의 도움을 받아 후티 반군의 주요 군사거점에 대한 공격을 펼치고 있는 것.

무력충돌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미국과 후티 반군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란은 이라크, 시리아에 이어 엉뚱하게도 파키스탄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그러자 파키스탄도 보복에 나섰다. 한편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투 중에도 레바논, 시리아 등지의 헤즈볼라와 이란 혁명수비대에 대해 공격을 퍼붓고 있다.


한 마디로 대난투(亂鬪)극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까. 그게 현재의 중동사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미 10개국이 이 전쟁에 끌려들어가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중동전체가 전쟁의 불길에 휩싸일 가능성을 경고했다.

‘푸틴은 발트 해 국가들을 공격할지도 모른다.’ 안보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지의 경고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 때문에 그 대안으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 해 지역의 소국들이나 몰도바를 공격, 점령할 수도 있다는 거다. ‘아니 그보다는 핀란드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 유럽 일각에서 던져지고 있는 또 다른 전망이다.

발상지는 중국의 우한이다. 그 코로나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세계로 번졌다. 최악 상황의 팬데믹이 급기야 지구촌을 덮친 것이다. 유럽에서, 중동지역으로 전쟁이 속속 확산되는 양상이 마치 바이러스가 번지는 것 같다고 할까.

이 전쟁 바이러스의 근원지는 유럽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것으로 뒤이어 발생한 것이 하마스의 테러공격이고 이는 가자 전쟁에, 후티 반군의 불장난, 그리고 시리아, 레바논, 이란까지 그 불길이 확산될 형세다.

그리고 거대 유라시아 대륙 반대 쪽 북한의 김정은 체제도 그 전쟁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양새다. “2024년 초 남한에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 김정은이 이 같은 지시를 내린 게 지난해 말께였나. 이후 포사격에, 미사일 발사에, 전쟁선포에 가까운 말 폭탄을 퍼부으면서 한반도 정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가고 있다.

전 세계로 번지고 있는 전쟁 바이러스. 그 같은 상황 전개의 장본인은 푸틴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분명한 그의 작품이다. 가자 전쟁을 일으킨 하마스, 서방의 상선을 마구 나포하고 있는 후티 반군, 그리고 도발에, 도발만 일삼는 북한의 김정은 체제. 그 배후에 얼쩡거리고 있는 것 역시 푸틴으로 곳곳에서 그의 지문이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그러자 전선을 확대시켜 미국과 서방의 힘을 분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푸틴의 행보와 관련, 이탈리아의 중국문제 전문가 프란체스코 시시는 ‘푸틴을 군사적으로는 둔재, 정치전쟁에서는 귀재’로 평가했다.

유라시아대륙 서부전선에서 시작된 전쟁의 불길이 중동으로, 그리고 서태평양, 극동지역으로 번질 기미가 보이고 있는 현 상황. 이는 그러면 전적으로 푸틴 탓으로만 볼 수 있을까. 분명히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미국은 쇠락하고 있는 세력’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결과의 반증으로 보아야 한다는 게 적지 않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비교하자면 미국을 거대 매머드로 볼 수 있다. 어떤 맹수든 1 대 1로는 매머드의 적이 되지 못한다. 매머드를 여럿이 둘러싸 공격해 피를 흘리게 하는 거다. 매머드는 결국 지치고…’ 전쟁 바이러스가 번져가는 현 상황에 대한 묘사다.

‘유럽과 중동지역에서는 이미 열전(熱戰-hot war)이 전개되고 있고 동아시아에서는 아슬아슬한 평화(cold war)가 유지되고 있다. 이 오늘의 정세는 2차 대전 직전의 상황과 상당히 흡사하다.’ 존스 홉킨스대학의 할 브랜드의 지적이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의 이해는 서로 달랐다. 그리고 각기 다른 지역에서 세 확산을 위해 전선을 구축해 나갔다. 그런 이 추축국 세력들이 영미중심의 세계질서 타도라는 공통된 목적 하에 연합전선을 구축해 나가게 되자, 유럽,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동아시아, 이 세 곳에서의 분쟁은 직접적인 연계성을 가지며 세계대전으로 비화됐다.

푸틴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회교혁명정권의 이란, 그리고 김정은 체제의 북한. 이 권위주의 독재세력은 한 가지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 미국 중심의 ‘규칙에 기초한 국제질서(rules-based internal order)를 어떻게든 파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그들이 유럽과 중동, 2개 전선에서의 동시전쟁에 허덕이고 있는 미국을 새삼 주시, 서로간의 연대강화와 함께 3개 전선에서 각기 약진을 통한 ‘세 불리기’를 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과거 소련과 중공이 동맹관계인 시절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블레싱’하에 남침을 한 사실이다. 오늘날 푸틴과, 시진핑은 제한 없는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 타도’라는 공통의 목표와 함께 하나가 된 것이다.

‘이런 정황에서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대만해협의 풍운과 관련해 도발대행업자로 나설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북한문제 전문가 안드레이 란코프의 진단이다. 그 시기는 언제일까. 빠르면 미 대선기간이 낀 앞으로의 12개월, 늦어도 2020년대 후반기….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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