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루저 팀, 루저 비벡, 그리고 루저 로널드

2024-01-2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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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공화당 대선 후보 중 실망스럽지 않은 사람은 없지만 그 중 첫번째로 꼽아야할 인물이 팀 스캇이다. 어릴 때 부모가 이혼하는 바람에 간호 보조사로 일하는 홀 어머니 밑에서 자란 그는 풋볼에 재능을 보였지만 교통 사고로 그 길을 포기하고 보험업으로 성공을 거둔 후 이를 발판으로 1995년 찰스턴 카운티 의원에 당선된다. 남북 전쟁 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흑인 공화당원이 선거에서 이긴 것은 그가 처음이다. 2008년에는 주 하원의원에 출마해 당선되는데 흑인 공화당원으로서는 이 또한 100년만에 처음이다.

2012년 사우스 캐롤라이나 출신 짐 드민트 연방 상원의원이 은퇴하자 당시 주지사였던 니키 헤일리는 그를 그 후임으로 임명, 사상 첫 이 지역 흑인 상원의원이 됐다. 그가 전국적으로 주목받는 정치인으로 뜬 것은 이 때부터다.

사우스 캐롤라이나는 공화당 강세 지역이지만 흑인 유권자 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80%는 민주당이고 공화당은 10%에 못 미친다. 민주당 경선은 당원의 50%가 넘는 흑인 유권자가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20년 대선 때 아이오와에서 4위, 뉴햄프셔에서 5위를 해 탈락 위기에 놓였던 바이든에 몰표를 줘 대통령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흑인 유권자들이다. 바이든은 그 보답으로 올해부터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첫번째 민주당 예비 선거 지역으로 정했다.


그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흑인으로 유력 정치인이 됐으니 백인 중심의 공화당의 외연을 높여줄 인물로 평가받았고 그가 올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약간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후 행보는 실망의 연속이었다. 보다 나은 미국 건설을 위한 아무런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패기도 토론 능력도 전무한 한심한 인물이라는 혹평 속에 중도하차하고 말았다. 그러다 어느 날 자신과 정치 성향이 확연이 다른 루저 도널드를 지지한다다고 밝혀 줏대 없는 인물임을 확인시킨채 올 대선 행보를 끝냈다.

딱하기는 올해 나이 38세로 차기 지도자로 각광받던 비벡 라마스와미도 마찬가지다. 인도 이민자를 부모로 태어나 하버드와 예일을 나온 그는 바이오텍과 금융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사업가로 하버드 재학 시절부터 하버드 정치 연합 회장을 하는 등 정치적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예일 로스쿨을 다니면서 바이오텍과 금융업과 관계를 맺으며 재학 중 이미 1,000만 달러가 넘는 재산을 모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대선 출마와 함께 루저 도널드야말로 “21세기 최고의 미국 대통령”이라는가 하면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루저 도널드를 사면하겠다느니 하면서 자신이 충실한 루저 도널드 ‘미니미’임을 분명히 했다. 진짜 루저 도널드가 나왔는데 이런 가짜 루저에게 표를 줄 미국인은 없다. 아이오와 당원 대회에서 저 아래 처진 4위를 한 그는 루저 도널드를 지지한다는 한 마디 말과 함께 퇴장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들보다 지속적이면서 초라한 몰락을 맛본 사람은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다. 그가 2022년 주지사 선거에서 상대방을 플로리다 사상 최다 표차인 20% 포인트 이기자 그는 차기 대선주자로 급속히 떠올랐다. 6주 지난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리버럴 성향의 디즈니와 전쟁을 벌이며 연방 정부의 코비드 폐쇄 조치에 반기를 든 그는 보수파의 스타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하버드와 예일을 나온 학력에 이라크 군 복무 경력, 세 자녀의 아버지로 모범 가정의 가장인 그는 깨끗하고 스마트한, 루저 도널드의 대안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작년 초 가주 등 일부 지역에서는 루저 도널드를 제치고 당내 지지율 1위를 기록한 적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이미지는 막상 선거 캠페인이 시작되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로봇 같은 토론 자세와 지겨운 잡무를 처리하는 듯한 유권자와의 만남, 아무런 정치적 매력도, 재미도 찾아볼 수 없는 유세장에서의 그의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가 전력을 기울였던 아이오와에서 루저 도널드와 30% 포인트 차로 패하자 뉴햄프셔 예비 선거를 앞두고 그는 루저 도널드 지지를 표명하며 후보직을 사퇴했다.

이로써 공화당내 경선은 끝났다고 봐도 된다. 뉴햄프셔에서의 결과와 상관 없이 다음에 열릴 사우스 캐롤라이나 경선에서는 루저 도널드가 이곳에서 주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를 68대 28(파브리지오), 또는 57대 19(모닝 컨설트)로 앞서가고 있다. 자기 고향에서 이런 대접을 받은 후보가 대선 경선에서 승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올 대선 공화당 후보는 루저 도널드라 봐도 좋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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