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불합리한 재외선거 제도, 재외국민 투표로 바꾸자

2024-01-18 (목) 노세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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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10일 한국에서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된다. 지난 2012년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는 재외국민들에게도 투표권이 다시 부여된 이래 7번째 치러지는 선거다.

재외국민 선거 역사는 196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7년 대선 및 총선과 1971년 대선 및 총선 등 4차례에 걸쳐 재외공관원, 월남 파병군인, 지·상사 직원, 독일 광부와 간호사 등을 대상으로 우편투표 방식의 재외선거가 실시됐었다.

해외 한인사회의 반정부 성향을 우려한 유신정권은 1972년 선거법 부칙에 ‘부재자 가운데 외국 거주 유권자는 제외한다’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재외국민 참정권을 서둘러 폐지했다.


그러다가 2004년 미국을 비롯한 해외 한인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2007년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09년 국회의 공직선거법(재외국민 참정권법) 개정 절차를 거쳐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재외국민들의 참정권이 회복됐다.

참정권법 명칭이 재외동포 참정권법이 아니라 ‘재외국민’ 참정권법인 까닭은 국적 개념을 적용해 시민권자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적자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져서다. 참정권 ‘허용’이 아니라 ‘회복’인 이유는 지난 1967년과 1971년 4차례에 걸쳐 우편투표 방식의 참정권이 주어진 사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올해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주재원과 국가공무원, 파병군인, 유학생 등 한국에 주민등록이 있는 일시체류자(국외부재자)는 지역구 및 비례대표 선거에서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해외 거주 영주권자(재외선거인)에게는 지역구 선거를 제외한 비례대표 선거 투표권이 부여된다.

2023년 기준으로 재외선거 투표권을 가진 전세계 한인 유권자들은 재외동포청이 집계한 재외국민(247만명)의 80%선인 197여만명으로 추산된다. 200여만명에 달하는 해외 거주 한인 유권자들이 이번 총선에서 참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선거인 등록방법과 투표방법에 있어서 아직 많은 문제점들이 산재해 있다.

현행 선거법에서 재외국민은 인터넷을 활용하거나 대리자를 통해 재외선거인 신고 및 신청이 가능하다. 하지만 투표만큼은 자신이 거주하는 관할 공관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해외 한인들의 한국 정치에 대한 높은 관심도에 불구하고 현실은 위와 같은 이유로 녹록지 않다. 많은 미주 한인 유권자들은 한반도 면적의 97배에 달하는 곳에서 LA총영사관 등 공관과 몇몇 지역에만 투표소를 설치해놓고 투표하라는 것은 사실상 투표를 하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한국 정부가 현장 투표만을 고수하다보니 가장 많은 재외선거인들이 투표했던 2017년 19대 대선에서도 실제 투표수(22만1,981명)는 전체 추정 유권자 대비 11.2%에 불과했다. 이같은 재외국민 투표수는 전체 대선 투표자(3,280만8,377명)의 1%에도 못 미치는 0.68% 선이다.


2월10일 22대 총선 등록 마감일을 3주 정도 앞두고 현재 LA 등 미 전역과 전세계적으로 재외선거인 등록이 진행되고 있지만 참여율은 여전히 미흡한 상황이다.

2012년 첫 재외선거 당시에 한나라당을 비롯한 주요 3당은 유권자가 공관에 직접 찾아와 투표하는 현행 제도로는 재외국민이 실질적으로 선거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데 인식을 공유하고 우편투표제 도입에 한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한발 더 나아가 인터넷투표 도입을 대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반면 주무 부처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비롯한 한국 정부기관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고히하고 절차상 문제가 없도록 제도를 구비하는 것이 재외국민 투표에서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이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OECD 국가의 3분의 2가 재외국민의 우편투표를 허용하고 있으며, 프랑스와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 일부 국가가 전자투표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이 인터넷 투표에 소극적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재외국민 선거가 부활됐을 무렵만 해도 우편투표 도입 등에 목소리를 내왔던 한국 정치권에서 이렇다 할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까닭은 재외국민들의 절대적인 투표수가 너무 적어 표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재외동포 정책을 총괄하는 재외동포청이 지난해 6월 출범했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전세계 재외동포 숫자는 한국 인구의 14.1%에 달하지만 2024년도 재외동포청 예산 1,055억원은 전체 예산의 0.02%에 불과하다. 2세들의 발목을 잡고 있는 선천적 복수국적법 개정 등 동포 정책 관련 현안도 산적해 있다.

그동안 여야 각 당은 표가 적다는 이유로 재외동포 정책에 소극적이거나 실현성이 없는 ‘립서비스’만을 되풀이해 왔다. 우선 해외 한인들은 유권자 등록률부터 높이고, 여당과 야당의 경계를 떠나 동포 정책에 적극적인 정당에 몰표를 주는 ‘전략적 투표’에 나서야 한다.

2022년 치러진 20대 대선에선 양당 후보의 표차가 25만표에 불과했다. 200만명의 추정 유권자 중 50%가 유권자 등록을 하고, 이 가운데 절반만 투표해도 50만표다.

박빙의 승부에선 재외국민들의 투표가 캐스팅 보트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제도에 문제점이 많다고 투표를 포기하기엔 애써 부활시킨 재외국민 선거의 소중함이 너무 크다.

<노세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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