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선균, 한 별이 지다

2024-01-05 (금) 제프 안 조지워싱턴대 한인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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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별이 지고 하늘 아래 세상은 다시 진흙탕이다.

우리가 스타라고 그들을 부르는 이유는 우리가 범할 수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 세상으로 내려와 그 화려한 아우라를 벗고 범상들 마냥 룸살롱에서 아가씨들과 술 마시고 마약하고 실장과 불륜하고 협박당하고 잡혀 가서 취조 받고 오물을 뒤집어쓰면 그는 더 이상 스타가 아니다.

별이 되고자 한평생 외길을 살다 하루아침에 오스카 작품상 영화의 주역배우가 되고 월 클 스타가 되더니 10월 어느 날 마약 스캔들에 연루되고 연말 성탄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 한 해의 끝자락에서 혼연히 우리 곁을 떠나버렸다. 그가 떠나기 전까지 그에게 돌팔매질을 하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스캔들이 점입가경으로 치닫을 시기, 뉴스를 같이 시청하던 와이프에게 단언했다. “저 친구 끝났어.” 한국 정서에 마약과 불륜, 더군다나 그는 스타이기 전에 한 가정의 남편이며 아버지다. 그러나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물론 그에게는 선택 없는 외길이었겠지만 그의 영구차 앞에 서있는 어린 아들 그리고 상복입고 울먹이는 그의 아내를 바라보니 내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그를 평가했더란 말인가? 아마도 ‘나의 아저씨’에서 눈앞의 부조리 앞에서도 꿋꿋하게 정도를 지키며 직장의 상관과 선배 역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 역을 충실히 하던 그를 나는 은연중 아이돌 화했던 모양이다. 극중에서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아니야.” “앞으로 행복하게 살자.” 등의 명대사가 현재의 암담함과 오버랩 되어 슬픔을 가중시켰다.

아이 기르는 어머니들이 늘 하시는 말씀이 여자 조심이다. 어머니도 여자인데 오죽하시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

지인 한 사람은 대놓고 자신은 ‘프로’를 선호(?)한다며 뒤끝이 없어 좋다 말했다. 단연코 말하는데 이 세상에 프로는 없다. 없은 지 오래다. 마약하고 불륜하고 그것을 미끼로 협박하고 경찰에서 다 불고, 결국 한 인생 한 가정을 종치게 만들었다. 정말 무서운 세상이다. 소위 말하는 ‘프로’가 무섭고 그 뒤에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더 끔찍하다. 사람 속에서 인간의 탈을 쓰고 기생충으로 번식하며 고통을 안기는 이들이 무섭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충’에서 그는 “선을 넘는 이들이 싫다” 말했다. 물론 이 사건에서 ‘선’을 지킨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겠지만 서글프면서 겁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본인이 자초한 과오라 말한다면 할 말 없다.

성탄의 깊은 의미는 탄생 그리고 부활의 기적에 있다. 아무리 어려운 고난이라 해도 참고 견디어 다시 한 번 재생과 부활을 도모하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생에 한 가지 길만 있는 것도 아닌데….

우리 집 크리스마스트리에 걸어놓은 수많은 전등 별들은 깜박거리며 어두운 거실을 훈훈히 덥히는데 창밖의 차가운 겨울 밤하늘, 그의 멋있던 모습 유성처럼 떨어져 어디로인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제프 안 조지워싱턴대 한인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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