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함께 꾸고 싶은 공동의 꿈

2024-01-0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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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마음이 바쁘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아쉬움, 후회, 자기반성이 나온다. 속절없이 지나가는 세월 앞에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고, 헛됨과 덧없음까지 은혜로 끌어안으며 감사의 고백을 하기도 한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마음을 일으키고 몸을 도닥여 새해의 꿈을 꾸는 때가 이 무렵이다.

한 해의 삶을 돌아보며 다시 겸허해지고, 다시 순수해지고, 다시 본래의 나로 돌아가 인생을 마주하는 비움과 거룩의 시간이다. 한 시인은 해마다 송년을 맞으면 도리없이 인생이 느껴지고, 철이 들고, 마음에 거룩한 신(神)이 느껴진다고 한다.

“…송년에 즈음하면, 신이 느껴집니다. 가장 초라해서 가장 고독한 가슴에는, 마지막 낙조같이 출렁이는 감동으로, 거룩하신 신의 이름이 절로 담겨집니다…”(유안진, 송년에 즈음하면)


연말연시, 저마다 간절한 꿈과 소원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함께 꾸고 싶은 공동의 꿈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꿈을 허황한 꿈, 개꿈으로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렇지 않다. 꿈은 삶의 실존이다. 성경에도 꿈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꿈은 고난을 이기게 하고, 하느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게 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

개인과 세상을 향한 어떤 목표나 내면의 욕구가 상징적으로 밤에 꿈(dream)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마음에 꿈(Vision)으로 자리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꿈은 단지 꿈이 아니요 강력한 희망이요, 실현될 현실이다. 과학의 발전이나, 인류 사회의 아름답고 위대한 진보의 많은 부분이 한 사람이나 공동의 꿈에서 시작되었다. 꿈은 미래를 여는 힘이다.

연말연시는 개인과 세상을 위한 꿈을 다시 새롭게 할 때이다. 하늘로부터 꿈을 받아야 하고, 꿈을 꾸어야 하고, 꿈을 품어야 한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함께 꾸는 공동의 꿈이 있는가? 나와 이웃, 이름 모를 사람들까지 마음에 품어 꿈을 꾸는 공동의 꿈을 지닌다는 것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요, 사랑이다. 꿈이 같다는 것은 실로 벅차게 기쁜 일이요, 나와 이웃이 하나 되는 일이다.

새해 함께 꾸고 싶은 공동의 꿈으로 노숙자 없는 세상을 꿈꾸고 싶다. 이론적으로 노숙자 없는 세상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노숙자가 감소하는 세상을 꿈꾸고 싶다.

미국 주택도시개발부(HUD)는 올해 노숙자가 65만3,000여 명이라고 발표했다. 전년도에 비해 12%가 늘어난 수치다. 자녀가 있는 노숙자들, 청소년 노숙자들이 15.3%나 급증했다고 한다.

노숙자 발생은 복합적이다. 노숙자 문제는 우리 사회 전체가 풀어가야할 사회 병리적 현상이다. LA에 있는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한인 노숙자 시설을 가보면 이민 와서 얼마 전까지도 번듯하게 기업활동 하던 사람들이 들어와있다. 언제든 누구든 노숙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물론 종교단체나 일반 시민들 모두 노숙자가 증가하는 사회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노숙자 없이 더불어 함께 따뜻하게 살아가는 대동(大同)의 세상, 얼핏 보면 자본주의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꿈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함께 꾸어야할 크고 벅찬 꿈이다. 아무리 국가 경제가 잘 돌아가고, 국내총생산(GDP)이 높다 한들, 여기저기 노숙자가 늘어난다면 그런 사회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 꿈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극히 작은 자 한 사람도 소외돼서는 안 되는 세상을 향한(마태25:40) 꿈이다.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위대한 왕이나 정치인이나 뛰어난 경제학자도 온전히 이루어내지 못한 세상을 향한 꿈이다.

‘중용’에 유천하지성위능화(喩天下至誠爲能化)라는 말이 있다. 지극한 정성이 있으면 능히 근원적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비록 실현성이 의심되는 꿈일지라도 그 안에 사회적 약자를 향한 배려와 사랑, 지극한 정성이 담겨 있다면 능히 세상을 바꾸는 꿈이 될 것이다.

새해 꿈장이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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