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한의 음악이 있는 인생 2막 혹은 3막
2024-01-02 (화)
박기한
▶ 마음의 위로가 필요할 때 듣기 위해 모은 필자의 두번째 플레이 리스트
지난번 글에서 필자의 플레이리스트를 공개를 하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지면 관계상 너무 적은 곡들만을 소개할 수 밖에 없었기에, 그 아쉬움이 너무 커서 두 번 연속 플레이리스트 공개 글을 올려보려 한다. 매번 얘기하게 되지만 스트리밍 중심의 요즘의 음악감상 환경이 되면서 CD를 구입하여야 들을 수 있었던 수많은 음반들을 적게는 한 달에 10불 언저리로 거의 모두 들어 볼 수 있게 되었고 그 음반들 중 엑기스 만을 골라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음반 리뷰어 입장에서는 앨범 중심으로 감상해 보라고 권하고는 싶지만 캐주얼하게 음악을 그저 즐기고 싶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에게 와닿는 음악만을 모아 듣는 것이 그들의 권리이고 너무 자연스러운게 아닌가? 거기에서 필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캐주얼 리스너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바운드리를 조금은 더 넓혀 주는 일이 아니겠는가!
1. Giovanna Pessi & Susanna Wallumrød – Which Will (from [If Grief Could Wait](2012))
스위스 출신의 바로크 하프 연주자 Giovanna Pessi와 노르웨이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Susanna Wallumrød가 만나 ECM사의 거의 모든 프로듀싱을 하고 있는 설립자 Manfred Eicher의 추가적인 음악적 아이디어와 지원을 통해 2011년 녹음이 되어 2012년 2월 세상에 선을 보인 걸작 앨범 [If Grief Could Wait]의 수록곡이다. 17세기 영국의 위대한 작곡자 Henry Purcell의 곡들을 중심으로 한 앨범이었지만 보컬리스트 Susanna Wallumrød의 자작곡이 2곡, 캐나다의 음유시인 Leonard Cohen의 곡이 2곡 그리고 여기 소개하는 요절한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Nick Drake의 이 [Which Will]이 함께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다. 영롱한 바로크 하프가 원곡과는 상당히 다르게 편곡되어져 있기는 하지만 원곡에서는 아쿠스틱 기타로 연주된 파트를 연주하며 아침 안개 같은 Susanna Wallumrød의 목소리를 받쳐주고 있는 앨범의 백미 중 한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있다보면 이 음반의 주 소비층이 될 듯한 맑고 여린 감성의 소유자들의 화신으로서 스물 여섯해라는 짧은 생만을 살다간 작곡자의 영혼이 리스닝 룸 위로 얼핏 보이는 듯도 하다.
2. Jay Ungar & Molly Mason – Ashokan Farewell (from [Harvest Home] (1999) 또는 [The Civil War] O.S.T. (1990))
미국인들에게는 fiddle (바이올린) 연주자 Jay Ungar의 이름을, 아니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의 작품의 멜로디를 기억하게 해주는 사건이 있었다. 주로 미국의 문화, 역사 등을 애정어린 시각으로 다루어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만드는 감독 Ken Burns의 1990년도 PBS TV 시리즈 [The Civil War (남북전쟁)]에 Jay Ungar의 D장조 왈츠곡인 아름답고 구슬픈 곡 [Ashokan Farewell]이 삽입되었던 것이다. 굉장한 호평과 함께 화제속에 방영되었던 총 11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Ashokan Farewell]은 무려 25번이나 나왔다고 한다. 그 중의 하이라이트 부분은 역시 Rhode Island주 두 번째 지원자였던 대위 Sullivan Ballou가 자신의 아내 Sarah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되었을 때였다. 자신의 변함없는 굳은 신념과 아내에 대한 절절한 사랑, 회한 등이 그 어떤 낭만주의 시인의 ‘시’보다도 더 아름답게 표현된 그 편지가 잔잔히 낭독되어질 때 흐르는 [Ashokan Farewell]은 당시 수많은 미국인들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 편지를 쓰고 난 후 편지의 주인공은 일주일 후 전사했다는 사연과 함께… 그 부분은 이 다큐멘터리의 사운드트랙 [The Civil War]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물론 그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버전도 꼭 들어보기를 권하지만 이 글에서 특히 더 추천하는 버전은 이들이 Nashville Chamber Orchestra와 협연하며 느리게 감정을 더욱 쏟아부어 다시 연주한 1999년 앨범 [Harvest Home]에 수록된 버전이다.
3. Paolo Fresu – The Silence of Your Heart (from [Tempo Di Chet] (2021))
이탈리안 트럼펫터 Paolo Fresu의 2021년도 앨범 [Tempo di Chet]의 수록곡이다. 로맨틱한 재즈 트럼펫과 스윗트한 보컬로 전설이 된 Chet Baker를 기리는 이 앨범은 어딘가 동양인들의 취향에 맞는지(?) 미국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에서 매우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피아노, 더블베이스의 선명한 음색, 그리고 주인공 Paolo Fresu의 우수에 젖은 트럼펫 톤과 멜로디... 뮤트 된 트럼펫 톤도 적절히 섞어가며 들려주는 Paolo Fresu의 연주는 연륜이 느껴지는 절제와 정확함이 돋보인다. 곡이 연주되는 4분 21초간 릴렉스하면서도 오디오적 쾌감을 느끼게 해주는 잘 연주되고 잘 녹음 된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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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