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빔밥과 죽

2023-12-29 (금)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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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있는 곳이다. 하지만 이곳저곳에서 혼동과 혼란, 대립과 갈등이 생기게 된다. 어떤 때는 영원히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지금 당장 살기 힘들어서 세상과 단절하고 싶을 때도 있다. 놀이터의 시소처럼 올라가는 것 같다가도 곧 바로 내려오기도 하고, 내려와서 이제는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할 때가 있지만 또 다시 올라가는 것이 세상이다.

산다는 것은 마치 비빔밥 같기도 하고 죽 같기도 하다. 비빔밥이 맛있는 이유는 여러가지 재료들이 다 각각 섞여서 전체의 맛의 조화를 이루는 것, 곧 맛의 시너지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비빔밥에 들어간 재료 하나씩만 본다면 그렇게 맛나다고 할 수 없다. 마지막에 들어가는 고추장만 보아도 맵고 짠 것이 무슨 맛이 있겠는가? 그런데 그 고추장이 다 함께 재료들과 버무려질 때 세계인이 먹을 정도로 맛있는 비빔밥이 되는 것이다. 그런 비빔밥은 맛이 살아있고, 보기가 살아있고, 먹어서 힘이 되게 하는 살아있는 비빔밥이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는 핵이라고 하지만 정말 무서운 무기는 하나로 뭉치는 것이고, 제일 약한 무기는 다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다. 개미가 큰 나무 하나를 쓰러뜨릴 수 있는 것은 개미가 하나가 되어 나무를 갉아먹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의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세상은 지금 전쟁으로 오리무중하고 있다. 총과 미사일의 전쟁도 있지만 또한 힘과 힘의 대결의 정쟁도 있다.


그런데 정말 살아있는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은 비빔밥처럼 서로 섞여야 한다. 무지개 효과가 있어야 한다. 만일 비빔밥에 들어가는 자료들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낸다면 어떻게 비빔밥의 맛을 낼 것인가? 빨간 고추장이 싫다고 하얀 밥이 고추장을 밀어내면 그 밥은 비빔밥이 아니라 홀로밥이 될 것이다. 혼자 머물러서 그 밥그릇이 온통 하얗다고 좋아하겠지만 그것은 살아있는 비빔밥이 아니라 죽은 하얀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아니 억지로라도 같이 한 그릇에 다 함께 머무를 때 그것은 살아있는 비빔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비빔밥이 살아있는 밥이라면 죽은 힘이 없어 죽을 지경에 있는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죽은 비빔밥처럼 하나하나 살아있지 못하다. 비빔밥은 각자의 개성이 살아있어야 하지만 죽에 들어있는 재료들은 살아있으면 죽이 될 수 없다. 죽에 있는 것들은 다 개성이 죽고, 존재가 죽고, 크기가 죽고 다 갈아지고 작아지고 녹아져야 한다. 부드러워지도록 다 없어져야 한다. 죽을 먹는 사람이 입에서 어떤 것이 씹힐 정도로 있다면 그 죽은 더 이상 죽이 될 수 없다. 죽이 죽 되려면 그 모든 것들이 죽어야 된다. 죽어야 약한 사람, 힘이 없는 사람, 소화가 되지 않는 사람을 살리는 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곳저곳에서 살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그런 사람들이 다시 힘을 얻고 살게 하기위해서는 서로가 다 죽에 들어간 재료처럼 다 죽어야 한다. 작아져야 한다. 내 목소리도 작아야 하고, 내 권력도 작아져야 한다. 내가 작아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크지 못하고, 내 소리가 작아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소리가 클 수 없다. 다른 사람을 살리려면 내가 죽어서 죽이 되어야한다.

요즘 ‘생즉사 사즉생’이라는 말이 간절히 생각난다. 함께 살아있는 비빔밥 그리고 먹기에 좋도록 다 갈아 없어져 죽이 되어 피곤하고 실망한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이 12월의 성탄에 그런 비빔밥과 그런 죽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김범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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