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렌트 지원금 1년 넘게 감감 무소식… 세입자들 속탄다

2023-12-06 (수) 12:00:00 남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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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주 ‘하우징 이스 키’ 프로그램 적체 심각

▶ 지원자 7만명 심사 결과 기다리며 하세월, 시민단체들 “주정부 제도 관리 부실” 질타

렌트 지원금 1년 넘게 감감 무소식… 세입자들 속탄다

가주 정부의 렌트 지원 프로그램이 관리 부실로 도마에 올랐다. [로이터]

프리랜서 영화제작자인 마이크 애디스는 팬데믹으로 할리웃 영화산업이 침체기를 맞으면서 수입이 끊겼다. 1년 넘게 수입이 없다 보니 마리나 델레이 항구 근처 아파트 렌트비를 내지 못해 4만여 달러를 체납한 상태였다. 다행히도 캘리포니아 주정부의 ‘하우징 이스 키’라는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안 애디스는 지원 마감일이 임박한 지난 2022년 1월에 지원서를 접수시켰지만 올해 10월까지 아무런 소식을 듣지 못하고 있다. 애디스는 “마감된 지 2년이 되어가는데 지원서는 검토 중이란 말만 들었다”며 “전에 살던 아파트에서 나와 거처를 옮겼지만 렌트비 체납으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렌트비를 미납한 세입자 구제 목적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인 ‘하우징 이스 키’(Housing Is Key)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지원서 처리가 지연되면서 적체 현상이 빚어져 7만여명의 지원자들이 2년 가까이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는 데다 지원금 재원마저 고갈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주정부의 관리 부실을 질타하는 시민단체들의 목소리에 가주정부는 불필요한 소송 남발이 지원서 적체 현상의 원인이라고 맞서면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사이 지원금을 기다리는 세입자들의 한숨만 깊어지고 있다.


5일 비영리 정책분석 매체 캘매터스는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인 하우징 이스 키가 주정부의 관리 부실로 인해 지원서 적체 현상이 심화되면서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가주 주택지역개발부(DHCD)에 따르면, 지난 2022년 3월 지원서 접수를 마감 이후 올해 10월까지 적체된 지원서는 모두 7만3,059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중 3만3,658건의 지원서는 서류 내용 검토를 이유로 지체되고 있으며, 나머지 3만9,401건은 지원 거부 결정에 불복해 재심사 과정에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7만여건이 넘는 지원서들이 마감일이 지나 2년 가까이 지난 시점이지만 승인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지원서 적체 현상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남은 지원금 재원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DHCD가 지금까지 하우징 이스 키 프로그램을 통해 지급한 렌트비 지원금은 총 47억달러로 37만 저소득 가구들이 혜택을 보았다. 남은 예산 규모에 대한 공식적인 수치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대략 1억7,100만달러 수준의 금액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추정치다. 이를 근거로 1가구당 지원금이 평균 1만2,018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렌트비 지원금을 받을 가구수는 1만4,000가구에 불과한 수준이다. 7만3,00여건의 펜딩된 지원서에 비하면 남은 재원으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구수는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계산이다.

그렇다고 적체된 지원들이 모두 승인을 받을 가능성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거부율이 높기 때문이다. DHCD에 따르면 2022년 중반까지 지원서에 대한 승인 거부율은 29%로 지원 프로그램으로는 높은 수준이다. 특히 올해 10월 초 승인 거부율은 17%로 감소했지만 11월의 승인 거부율은 38%로 다시 반등했다. 적체된 남은 지원서 중 거부될 확률이 높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대목이다.

세입자 권익 옹호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이번 렌트비 지원 프로그램의 심각한 적체 현상은 가주정부의 부실한 관리에서 비롯됐다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이에 대해 가주정부는 적체의 직접적인 원인이 시민단체들의 소송에 따른 여파라고 맞대응에 나서고 있다. 시민단체들이 가주정부가 지원서 승인 과정에서 편파적이라는 이유로 지난 2022년 7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승인 과정 조사를 위해 올해 1월까지 승인 업무를 정지시킨 바 있다.

<남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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