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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운 문양목 선생 유해봉환 추진

2023-11-30 (목) 장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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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관 많아 협력 필요

우운 문양목 선생 유해봉환 추진

우운 문양목 선생.

미주지역에서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다 별세한 우운 문양목 선생의 유해봉환을 위해 북가주가 나섰다.

생전 조국의 독립을 염원하고 조국에 묻히고 싶다는 유지를 남긴 문양목 선생은 결국 소원을 성취치 못한 채 캘리포니아 멘티카 지역의 파크 뷰 공동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문 선생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하기 위해 올 초 부터 이를 진행해 온 최홍일 변호사에 따르면 유해를 본국으로 봉환하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한다.

우선은 남아 있는 후손들이 문양목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묘지 파묘 등에 모두 동의해야하고, 이후 법원에서 묘소를 파묘하고 한국으로 봉환할 수 있도록 승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해가 묻혀 있는 묘지 측에서 동의를 해야 되며 누구라도 이를 반대하는 의견이 개진이 되면 법원에서 청원을 불승인할 수 있다. 법원의 승인에는 유족의 찬성과, 가주 동포들이 누릴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의 여부가 중요하기에 한인들의 서명운동 동참이 필요하다.


유족들은 문양목 선생 유해의 본국으로의 봉환을 찬성한 상태로 최 변호사가 자비를 털어 유해 봉환을 위해 여러모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지만 법원의 승인과 관련한 문제들과 발생하는 비용등 난관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최홍일 변호사는 현재 샌 호아킨(San Joaquin) 카운티 담당 부서와 유해봉환에 대한 협의를 마친 상태이며, 유족인 손자녀들의 이장 동의서를 수합, 행정당국에도 청원을 넣은 상태이다.
우운 문양목 선생 유해봉환 추진

최 홍일 변호사가 문양목 선생의 유해 봉환을 진행하며 묘소를 방문했다. 문선생의 묘소 앞에는 수많은 일본인들의 묘소가 위치해 상대적으로 초라해 보이는것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현재 새크라멘토 한인회(회장 조현포)가 주축이 되어, 샌프란시스코 한인회(회장 김한일), 이스트베이 한인회(회장 이진희), 실리콘벨리 한인회(회장 우동욱), 몬트레이 한인회(회장 오영수), 리노 한인회 (회장 김수철) 등 북가주 지역 및 네바바 주 한인회에서는 문 선생의 유해봉환을 찬성하고 바라는 ‘문양목 지사 유해 봉환 청원’서에 지역 동포들의 동의를 받고 있으나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한국의 국가보훈부에서도 이를 진행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을 하고 있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 끝까지 예우를 다한다는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를 천명하며, '문양목 지사 유해봉환에 북가주 지역 동포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고 했다.

우운 문양목 선생은 충남 태안(당시 서산) 출신으로 1869년 6월 7일에 출생하여 1940년 12월 25일에 타계했다. 문 선생은 1903년 경기도 인천(현 인천광역시)에서 서당 교사로 활동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국권회복 운동에 투신할 목적으로 미국 하와이로 망명했다. 1908년 전명운, 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슨을 처단하자 재판 후원회를 결성했으며, 1909년 한인군사학교 설립 및 애국동지 대표회를 적극 후원했다. 1911년 2월 북미 대한인국민회 총회장에 당선되어 일제의 한국 강점에 대항하기 위해 군인양성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독립군 기지 개척과 해외 한인의 통합기관을 조직키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지역에 지방총회를 설립 했다. 1912년 신한민보 주필로 선임되어 책자 발간 등을 통해 항일 무장투쟁에 필요한 민족의식 선도에 앞장섰다. 이외에도 북가주 멘티카 지역에 거주하면서 스탁턴 지역 한인회장 및 학교설립, 교장 등을 역임했고 샌프란시스코로 이사 후 독립운동가 및 유족에 대한 후원사업에 주력하다 1940년 12월 25일 타계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5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장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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