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마약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마약 불법 유통과 사용은 막대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물론 각종 범죄를 유발하는 악의 근원이다.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 범죄에 마약이 연관된 사례가 많다. 마약류 사용으로 매년 10만 명 넘는 미국인이 죽는데, 특히 최근엔 신종 합성마약인 펜타닐 확산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더 싸고 유통도 쉬워지고 환각성도 강해진 펜타닐에 취한 미국인들이 좀비처럼 거리를 돌아다니는 장면이 충격을 주기도 했다. 불법 마약류는 대부분 중남미 국가 범죄 조직을 통해 미국으로 유입된다. 미국이 중남미 불법 이민자를 점점 강하게 차단하려는 주요 원인에는 마약 문제도 포함돼 있다.
중남미의 거대 마약 밀매 조직들은 '카르텔'로 불린다. 마약을 불법 유통한 수익으로 운영되며 대기업 같은 크고 치밀한 조직망을 갖췄다. 게다가 정규군 못지않은 화력과 병력을 갖추고 잔인한 폭력과 보복을 일삼는 공포의 대상이다. 지역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부패를 고리로 정부와 정치권에도 힘을 미친다. 위장 사업을 통해 돈세탁하고 반미 성향 정부나 군부와 공동이익을 추구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남미 카르텔은 코카인을 주로 취급했으나 최근엔 펜타닐 유통에도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의 시날로아, 로스 세타스, 콜롬비아의 메데인, 베네수엘라의 태양의 카르텔 등이 유명한 카르텔들이다.
중남미에서 마약 불법 유통으로 악명 높은 나라들은 대체로 민생과 치안이 좋지 않은 반미 성향 독재국가다. 게다가 펜타닐과 같은 신종 마약 제조에 필요한 화학 물질을 중남미 카르텔에 공급하는 배후로 중국이 지목되면서 중남미 마약 문제는 미국의 주요 안보 문제로 부상했다. 중국이 중남미 범죄조직을 통해 미국에 마약을 퍼뜨림으로써 사회를 혼란케 하고 국력을 약화하려는 하이브리드 전술을 쓰고 있다고 보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결국 미국이 군사 행동도 불사할 태세로 나섰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가장 크긴 하지만 정치적으로 반미 국가는 아닌 멕시코를 당장 건드리기 어려우니 베네수엘라가 첫 표적이 됐다. 여기엔 다양한 배경이 얽혀 있다. 베네수엘라는 대표적인 반미 국가인 데다 중국과 밀착 관계이며, 중국 일대일로의 중남미 거점이기도 하다. 중국은 펜타닐 등 합성마약 원료를 공급하고 자금 세탁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의심받는다. 미국은 마두로 정권이 마약 카르텔을 방조하거나 지원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결행을 위한 '빌드업'도 차근차근 이뤄지는 양상이다. 일단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트렌데아라과(TdA)와 태양의 카르텔, 멕시코의 시날로아 등을 '외국테러단체'(FTO)로 지정해 군사 작전 근거를 마련했다. 아울러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세계 주요 마약 밀매업자'로 칭하며 그를 체포하도록 정보를 줄 경우 보상금을 최근 5천만 달러(690여억원)로 2배나 올렸다. 베네수엘라 정부 수반이 국제적인 마약 밀매 두목으로 규정됐으니 베네수엘라 정부도 군사 소탕 작전의 대상인 마약 밀매 조직 취급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자 내친김에 미국이 여러 명분을 쌓아 베네수엘라를 침공하고 친중반미 성향의 마두로 정권을 교체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관측이 돌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마약 카르텔 소탕을 위해 군사력 사용을 지시했다는 미 현지 언론 보도가 나온 데 이어 베네수엘라 주변 해역에 해군 이지스 구축함 3척을 배치하고 4천명 넘는 병력을 투입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이에 놀란 마두로 대통령은 민병대 450만 명을 동원하겠다고 발표하며 강력한 저항 의지를 드러냈다. 마약 카르텔 문제를 연결고리로 카리브해에 전운이 드리우는 형국이다.
국제사회도 미국의 군사 행동 가능성에 술렁이고 있다. 베네수엘라와 비슷한 처지인 멕시코와 콜롬비아는 미국의 군사적 움직임을 강하게 경계했다. 베네수엘라의 우군인 중국도 미국을 향해 '베네수엘라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다만 중남미 국가들의 반응은 미국과 관계에 따라 엇갈린다. 브라질은 의례적 우려를 표하면서도 불개입 원칙을 재확인하며 한 발 뺐다. 아르헨티나와 에콰도르, 파라과이 등은 카르텔 소탕에 협력 의지를 보였다. 유엔은 현재 베네수엘라 인근에 조성된 긴장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바란다는 당연한 입장을 냈다. 마약 문제에서 인내 한계에 달한 미국이 다양한 카드와 포석으로 활용될 수 있는 베네수엘라 군사 작전에 실제 나설 수 있을까? 세계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