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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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손

2023-11-18 (토) 한재홍 /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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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나도 모르게 아내의 손을 잡아 보았다. 나는 늘 아내의 손이 큰 줄만 알고 느끼고 있었다. 그 큰 손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남편의 사역을 돕고 요리하며 특히 교인들의 힘들고 아픈 일들을 가슴에 안고 쓰다듬으며 보살피고 살아가는 줄만 알았는데 아내의 손이 너무 적은 것을 느끼며 가슴이 뛰며 무거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저 손으로 모든 일을 불평 없이 감당하느라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에 이르자 미안한 마음에서 왈칵 눈물이 났다.

왜 나 자신만 생각하고 아내에 대해서 깊은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이제야 철이 든 모양이다. 내 나이 80이 넘어서야 아내의 손길을 느끼며 되돌아본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새삼스럽게 깊이 느껴진다.


지금도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고 모든 일은 다 시키며 대접만 받아보려는 내 심보가 부끄럽기도 하다. 참으로 모르고 산 세월이 너무 길고 무심했다는 마음에 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거기에 이제는 생활비마저 넉넉하게 못 준 처지가 되었으니 더 무거운 짐이 아니겠는가 생각에 이르니 더 무겁다.

그래도 목사이니 나름대로 위로를 하고 받아야 하기에 하나님이 베푼 은혜에 고개를 돌려 보기로 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해석이 되지 않고 나 자신도 스스로 위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52년을 뒤돌아본다.

우리의 만남부터 지금까지 미국에 살아온 날들을 헤아려보며 위안과 감사를 드리며 자신을 뒤돌아보는 순간을 가지기로 했다.

그 작은 손으로 일해가면서 때론 목회하는 남편을 도우면서 세 아이들을 기르기에 너무나 힘이 들었을 텐데 불평 한 번 하지 않은 아내. 우리 하나님의 사랑이 손이 덮어주고 이끌며 힘을 주시었기에 견디지 않았을까 생각에 이르자 하나님의 은혜가 태산처럼 느끼어지며 감사가 터져 나왔다.

저 작은 손으로 남편과 목회의 현장에서 하루도 쉴 틈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묵묵히 기도하며 감당했던 아내. 참으로 감사가 또 터져 나왔다. 이렇게 감각이 둔하고 어리석은 길을 걸었다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철이 든다고 했던가? 하나 늦었지만 아내의 작은 손을 만지며 느끼고 지난날을 되씹어보는 나 자신을 보면서 우리 목회자들이나 남자들은 깊이 반성하면서 새로운 자신을 찾아 감사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한재홍 / 원로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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