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니 하우스’의 전면 모습. 집 주변에 테라스와 넓은 창을 적용해 실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했다. <토누 터널 건축사진작가 제공>
주방과 다이닝 공간, 거실이 하나로 연결된 공용 공간. 전면부에 통창을 통해 바깥을 감상할 수 있다. <토누 터널 건축사진작가 제공>
3.8m의 높은 층고를 활용해 복층으로 구성한 자녀방. <토누 터널 건축사진작가 제공>
북유럽 발트해와 접한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 북동쪽으로 9㎞, 차로 여유롭게 달려 30분쯤 걸리는 교외 마을 빔시. 울창한 숲이 둘러싼 작은 동네에 5년 전 단정한 집 한 채가 들어섰다. 대지의 일부인 듯 무덤덤하게 자리한 단층집은 입구를 지나는 순간 압도적인 숲 뷰(view)가 펼쳐진다. 키 큰 나무 사이로 푸른 잔디가 깔린 마당을 눈앞에서 마주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숲인지 정원인지 모를 드넓은 풍경 때문인지, 말끔하고 정연한 디자인 때문인지 시선을 어디로 돌려도 시원하고 편안하다. 이 전망 좋은 집은 미켈 니르기(50), 리사 니르기(36) 부부가 세 명의 자녀와 함께 사는 '타니 하우스'(Taani house·건축면적 342㎡,연면적 234㎡)다.
부부는 에스토니아 주택 회사 ‘해피홈(Happy Home)'을 운영한다. 건축가, 디자이너와 협력해 설계에서부터 인테리어와 가구제작, 시공까지 집 짓기 전 과정을 맡아 수행한다. 이들에게 빔시의 집은 가족의 스위트홈이기도 하지만 부부의 업으로부터 출발한 감각과 노하우를 총동원해 만든 포트폴리오 같은 공간이다. “건축 취향이 확고하고 심지어 집 짓는 일을 하고 있으니 준비가 절반 이상 돼있는 거나 다름없었죠. 디자인과 마감재, 소소한 디테일까지 모든 걸 직접 정하고 채웠어요."
집 짓기를 결심한 부부는 여느 에스토니아 사람들처럼 때 묻지 않은 숲에 마음을 뺏겨 땅을 덜컥 구입했고 설계 4개월, 시공 5개월을 거쳐 미니멀한 단층 목조주택을 완성했다. 미니멀하다고 하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전문가답게 재료와 디테일은 물론 주변 풍경까지 치밀하게 조율한 결과 집안 어디에 있어도 지루하지가 않았다. 주택과 자연, 안과 바깥이 쉴 틈 없이 공명하는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과 자연이 만드는 조화에 탄복하던 중, 남편의 설명이 이어졌다.
“에스토니아어 타니(taani)는 ‘덴마크'라는 의미예요. 이 집을 나라에 비유한다면 아마도 덴마크라고 생각했죠. 자연과 교감하면서도 지극히 단순하고 기능적인 미감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집에 숲을 들이기 위해
설계의 시작은 ‘숲'이었다. 미켈은 “메인 아이디어는 집에 가능한 한 많은 자연 풍경을 들이는 것이었다"며 “유리벽으로 만든 집처럼 숲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내기 위해 고심했다"고 했다. 부부는 동서로 길게 앉은 건물의 전면과 후면에 넓은 유리창을 설치해 파노라마 뷰를 들였다. 주방과 다이닝룸, 거실이 하나로 합쳐진 공용 공간의 경우 안마당을 향해 무려 6m 통창을 설치했다.
공용 공간과 마찬가지로 가족이 각자 머무는 침실 역시 숲을 충실히 담아냈다. 십 대 자녀부터 중년 부부까지 주인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공간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도 역시 큰 창으로 들인 풍경이었다. 프라이버시가 중시되는 안방에 코너창을 설치하고, 욕실에도 통창을 냈을 정도. “자연과 호흡하며 살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고 싶어서 가능한 한 크게 창을 만들었죠."
시야를 가로막는 벽이나 블라인드 없이 바깥으로 시선이 트여있다 보니 보이는 풍경에 따라 독특한 무드가 만들어진다. 넓은 앞마당 외에도 주변에 작은 뜰을 조성해 자연을 들였다. 집의 중심이자 안마당과 연결된 사우나실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그 백미라 할 만하다. 스팀 사우나를 즐길 수 있는 쾌적한 시설과 작은 거실 공간을 향해 “정말 좋다"는 탄성이 쏟아지자 따라온 설명. “사우나 문화는 혹독한 겨울을 견디기 위한 에스토니아인의 오랜 전통이에요. 개인 주택에는 대부분 사우나실이 있어요. 그것도 가장 좋은 위치에 말이죠."
■집을 완성한 건 ‘나무’
집의 시작점이 숲이었다면 집을 완성한 건 ‘나무'였다. 묵직한 직사각형 구조를 지탱하는 재료는 의외로 철근 콘크리트가 아닌 목재. 집을 둘러싼 유리창의 프레임까지 목재로 제작했다. 이렇다 할 멋을 부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고 담백한 분위기가 흐르는 데는 마감재의 공이 크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요즘 친환경 건축이 화두인데 나무는 환경 자체잖아요. 다양한 목재를 섬세하게 조율해 사용하면 자연에 가까워지면서도 기능적이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 수 있어요."
특이한 점은 이 집에 교차적층 목재(CLT·cross-laminated timber)가 주재료로 쓰였다는 것. 부부가 운영하는 ‘해피홈'의 주특기인 CLT는 한 방향으로 붙이는 집성목과 달리 나뭇결을 직각으로 엇갈리게 붙이는 방식으로 연결 구조가 견고해 일반 목재에 비해 강도가 뛰어나다.
재료의 장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부는 CLT 구조재로 주요 기둥과 보를 세우고, 벽체와 바닥은 CLT 패널을 사용했다. 미켈은 “CLT는 콘크리트 주택에 비해 공정이 빠르고 깨끗하며 소음도 적다"며 “목재 중에서도 CLT는 가장 혁신적인 재료"라고 강조했다. CLT로 지은 타니 하우스는 구조체 설치에 단 5일, 전체 시공에는 22주가 걸렸다고 한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목재로 마감했다. 나무의 물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어두운 톤으로 통일했다. 부부의 감각이 가장 돋보이는 곳은 복도. 이곳에는 검은색을 메인 색으로 해 벽과 문을 제작하고, 천장과 바닥은 이와 대조되는 베이지 톤 시멘트로 마감했다. “일부 벽체와 문, 붙박이 가구, 유리프레임을 목제로 제작하기로 하면서 톤을 맞췄어요. 공간의 본래 맛을 해치지 않으면서 무게감을 주고자 했죠."
■자연과 집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집의 사계절을 상상해 본다. 야생화가 만개한 봄의 정원, 여름날 키 큰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는 아이들, 오랜 친구들과 테라스에서 즐기는 가을볕,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적막한 숲을 바라보는 겨울밤을. “나에겐 완벽한 집"이라는 남편의 말대로 만든 사람의 기쁨과 만족이 선명한 모든 공간에서 부부와 가족의 담백한 일상이 눈에 그려지듯 다가왔다. 숲인지 정원인지 정의하기 어려운 마당처럼, 이들 가족의 삶도 고유한 모습으로 공간에 깊게 녹아드는 중이다.
“다시 집을 짓는다면 더 크거나 더 작은 집을 지을 순 있겠지만 이 집보다 더 좋은 집을 지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어디에 있든 돌아오고 싶은, 유일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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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시(에스토니아)=손효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