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어떻게 인지부조화를 극복할까’

2023-11-13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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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자신의 내면 생각이나 태도를 일관성 있는 결합체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는 쉽게 그 예외를 발견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흑인들도 백인들과 다름없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이웃에 흑인이 와서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또 어떤 사람은 어린아이들 모임에 참석했을 때 조용히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아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다른 손님들의 관심을 끄는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이처럼 인간 내면의 비일관성으로 인해 파생된 심리적 혼란을 모면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자기 정당성을 끈질기게 주장한다. 현실을 왜곡하여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라고 한다.”

(레온 페스팅거의 ‘A Theory of Cognitive Dissonance’ 중에서)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사람은 누구나 인지 부조화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을 때, 잘못된 사실을 쉽게 인정하지 않고 대신 현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끔 왜곡한다. 왜 그럴까. 첫째, 인간은 기회만 주어지면 자신을 정당화하는 일관성(consistency) 성향을 가졌기 때문이다. 둘째는 자신이 옳지 않았음을 인정하는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을 견뎌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인지 부조화의 부작용은 개인 뿐 아니라 사회공동체까지 미친다. 인지 부조화의 부작용을 재빨리 인식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 정당화의 덫에 걸려 판단의 혼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한 번은 ‘러스키 비에스트니크’ 출판사로부터 거금 4,500루블의 선금을 받고 작품을 쓴 적이 있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큰 돈을 손에 쥐었으니 도스토예프스키는 흡족했다. 두문불출하고 열심히 노력한 보람이 있어 작품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어느 날 갑자기 도스토예프스키는 쓰던 원고를 몽땅 쓰레기통에 집어 버리고 출판사에 편지를 썼다. “글빚을 지는 작가가 더 이상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미리 대가를 받고 하는 집필은 나의 창의성을 흔들어 놓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나 자신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습니다.” 자신 내면의 왜곡 가능성을 진실하게 꿰뚫어 보고 자신을 바로잡은 도스토예프스키는 인지 부조화의 모순에 빠지지 않는 위대한 작가였다.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면, 당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인지 부조화의 왜곡에 빠지지 않았다. 그들을 논란 많은 종교적 인지 부조화로부터 쉽게 극복케 한 신비한 힘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독립과 메시야에 대한 기대로 뭉쳐진 유대 군중을 압도하고 설득한 메시지는 과연 무엇이었나.

그것은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한 예수의 복음이었다.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아 예수가 오심으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담이 허물어지고 인류는 단일가족이 되었다. 새 시대가 열렸고 새 가치관이 형성되었다.

이젠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하고 합리화할 이유는 사라졌다. 예수의 십자가 은총을 받아들이고 그분을 신뢰함으로 인지 부조화의 염려는 쉽게 극복되었다. 초대 기독교는 이렇게 극적으로 인류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놓았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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