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마라톤

2023-11-1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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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육상연맹이 인정하는 6대 메이저 마라톤은 베를린, 런던, 시카고, 뉴욕, 보스턴, 도쿄 대회이다.

지난 4월 열린 2023 보스턴 마라톤에서 남자부 2연패에 성공한 에번스 체벳(케냐), 여자부는 헬렌 오비리(케냐)가 우승했다. 이번 달 5일에는 뉴욕시티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남자부 우승은 타미라트 톨라(에디오피아), 여자부 우승은 헬렌 오비리(케냐)가 보스턴 마라톤에 이어 승리했다.

뉴욕시티마라톤은 매년 11월 첫째주 일요일에 열리는데 이번 대회에 5만 명이 달렸다.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시작해 브루클린, 퀸즈, 브롱스, 맨하탄 등 뉴욕 다섯 개 보로를 통과하여 센트럴 팍이 결승선이다.


전세계에서 오는 참가자가 1만명 이상, 한국에서도 수십 명이 참가한다. 도로변에서 응원하는 관중만 200만 명 정도인데 이번 대회에 뉴욕 한인마라톤클럽 회원 25명도 완주했다.

올해, 달리기 루트 도로변에는 이스라엘 국기와 하마스 인질 사진을 든 시민들, 팔레스타인 깃발을 들고 뛰는 러너 등등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간의 전쟁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뉴욕시티마라톤 대회 모습은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달리기 루트 중 하나가 롱아일랜드시티 27가에 수십년간 자리했던 한국일보 사옥 뒷골목이었다.

퀸즈보로브리지를 건너 맨하탄으로 진입하게 되어있는데 일요일 당직때 마라톤이 열리는 일이 종종 있었다. 사방 길을 다 막아놓아 힘들게 돌아서 사무실로 가야 했는데 42.195Km 풀코스의 중간 지점이라선지 지쳐서 헉헉대거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물을 얼굴에 뿌리는 러너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보통 3시간이상~5시간 달리는 마라톤은 체력전이다.

마라톤 영화로 2005년 영화 ‘말아톤(감독 정윤철, 주연 조승우), 2012년 영화 ’페이스 메이커(김달중 감독, 주연 김명민)‘가 있고 최근 ‘1947 보스톤’(강제규 감독)이 개봉되었다. 1947년 서윤복(1923~2017) 선수의 보스턴 마라톤 우승 과정 실화를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담담하게 담아냈다.

서윤복(임시완 분)의 코치 손기정 역에 하정우, 서선수와 함께 뛴 36살 남승룡 선수(12등으로 노익장 과시)역에 배성우가 출연한다.
서윤복의 당시 기록 사진을 보면 왼쪽에 태극기, 오른쪽에 성조기. 가운데 KOREA가 쓰여져 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미군정 시절이라서다.

영화에서는 손기정이 “조선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왔다. 성조기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달리라는 것이 여러분이 말하는 독립정신이냐?”며 기자회견에서 항의, 태극기를 달고 달리는 것으로 나온다.


1897년 시작되어 제51회인 보스턴 마라톤에서 아시아 선수가 우승을 차지한 것은 처음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달려야 했던 손기정은 자서전에서 “승리가 눈앞에 있었다. 가슴에 빛나는 태극마크, 나는 서군이 부러웠다. 태극기를 달고 뛸 수 있는 그는 얼마나 자랑스러운 존재인가.” 했다.


세계신기록인 2시간 25분 39초로 1위 테이프를 끊고 들어온 제자 서윤복 선수를 안고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인간은 원래 달리기 본능이 있다. 원시시대 인류는 초원에서 다른 동물들과 달리기 경쟁을 하여 우위를 차지했다.

가장 빠른 치타 같은 동물은 한 시간이상 못 달리는데 과열과 젖산 축적 때문이다. 인간은 땀을 흘림으로써 열 축적을 해결하니 단거리보다는 장거리 주자로 진화되어왔다.
고대왕국에서 달리기는 왕이 왕국을 통치하기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할 자격요건이었다.

그 유명한 이집트의 파라오 람세스 2세는 재위에 오르기 전 왕좌의 자격을 입증하고자 피라미드 아래서 혼자 달리기를 했다.

마라톤은 다른 사람과의 호흡, 시간을 맞출 필요 없이 자신과의 싸움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의지와 지구력, 생명에의 충만한 기쁨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혼자 달려야 하는 것이 강점이다.

뉴욕시티마라톤을 보면서, 마라톤 영화를 보면서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마라톤에 도전? 자원봉사자라도? 하는 마음이 생겼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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