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7일, 달콤하고 향긋한 허니 써클이 한창 꽃을 피우던 때 버지니아에 귀한 손님 두 분이 오셨다. 비록 몸은 미국 땅에서 살고 있지만 항상 귀와 마음은 한국으로 향하고 있던 터라 평소에 좋아하던 두 분이 내가 살고 있는 이 버지니아에 일년 간의 연구 일정으로 오신다는 소식은을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두 분을 뵈니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어렵고 걱정스런 마음도 같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공항에서 들어오시는 두 분을 뵙고 그 이후 몇 번 더 사석에서, 그리고 공석에서 뵐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 그 여사님은 항상 같은 신발을 신고 계셨다. 몇 달이 지난 후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마음에 혹시 신발 쇼핑을 가시지 않겠냐고 조심스레 여쭈었고 여사님은 흔쾌히 그러자고 하셨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랬을까, 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고 갈 걸 하는 후회의 마음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난 여사님을 쇼핑몰 안에 있는 DSW에 모시고 갔고 여사님은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신발을 하나 고르셨다. 고르신 신발은 40불도 채 되지 않았고 내가 계산을 하려는 찰나 꾸중을 들어야했다. “은혜씨가 계산할 거면 난 다음부터 같이 안 와.”
두 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으로 페어팩스로 오시자마자 바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셨다. 폴스 처치 쪽에 있는 한인교회에 나가셨는데 이 교회에 다니는 지인이 전해주기를 두 분이 여행일정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 항상 일요일 예배에 나오셔서 신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모습에 교인들이 한번 놀라고, 또 새벽기도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신앙심에 두 번 놀랐다고들 한다.
사실 두 분의 소탈한 모습이야 가까운 지지자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인데 같이 만나서 좋은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가려고 해도 굳이 아바이 순대, 서울 순대, 토속촌에서 막걸리에 순대 한 접시를 같이 나누시던, 그리고 그 음식의 역사와 맛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나눠주시던 그 소박한 모습은 이제는 정겨운 추억이다.
그리고 가끔 우리들이 정치에 대한 울분을 토할 때마다 오히려 우리를 달래주시던 넉넉한 미소. 우리는 그 몇 번의 만남들을 통해 한국 맥주의 역사를 알게 되었고 남도음식 맛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부드러움을 배우게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외교와 순대의 공통점은 만들어지는 과정을 굳이 알 필요가 없다는 실질적인 생활의 조언(?)과 신당은 떡볶이가 최고라 농담하시던 그 여유. 이제는 다 그리움으로 남게 될 줄 그 때는 몰랐었다.
6월24일, 일년이라는 시간이 금방 지나고 한국으로 들어가신 이낙연 전 총리님 내외를 전국에서 2,000명이 넘는 인파가 공항으로 환영을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이 분들을 지지해서만이 아니라 이 분들의 인품과 노고를 다른 이들도 아는구나 하는 안심의 의미도 있을 것이다.
한바탕 폭풍우가 지나간 텃밭에 다시 갔다. 한 여름 폭풍우가 지나간 자리가 이렇게 처참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시원해진 기온만큼 선선한 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바람에 묻혀 실려 온 은은하면서 달콤한 허니 써클의 향기에 나도 모르게 버지니아에 살고 있는 많은 분들의 가슴에 진한 향기를 남기고 간 그 두 분이 생각났다. 영어 속담에 “Never meet your heros”라는 말이 있다. 틀린 말이다.
<
김은혜 버지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