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자 월드컵 최종전… 전반 6분 조소현 골로 ‘유종의 미’
▶ 16강 탈락엔 “실망스럽지만 미래를 볼 때… 인프라 점검”
콜린 벨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
2023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 월드컵 최종전에서 승점 1을 챙긴 한국 여자 대표팀의 콜린 벨 감독은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힘줘 말했다.
벨 감독이 지휘한 한국(FIFA 랭킹 17위)은 2일 호주 브리즈번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조별리그 H조 3차전 독일(2위)과 경기에서 1-1 무승부를 기록했다.
1무 2패, 조 최하위에 머문 한국은 목표로 했던 16강 진출은 실패했다. 하지만 ‘우승 후보’ 가운데 하나로 꼽힌 최강 독일과 비기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벨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강점, 역량을 최대한 펼칠 것이라 말씀드린 바 있다”며 “위험한 순간이 많았지만 우리 선수들이 굉장히 잘 싸워줬다”고 말했다.
벨 감독은 콜롬비아, 모로코전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팀의 역량을 그라운드에서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점을 줄곧 아쉬워했다.
경기 시작 6분 만에 조소현(무소속)의 선제골로 리드를 잡은 벨호는 전반 42분 만회 득점을 내줬지만, 이후 파상공세를 버텨 값진 승점을 챙겼다. 다만 벨 감독은 “조소현이 선제 득점을 잘 올려줬다”면서도 “16강에 오르지 못했다는 점은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벨 감독은 이날 2007년생으로 대회 최연소 선수인 케이시 유진 페어(PDA), 2002년생 유망주 천가람(화천 KSPO)을 선발로 내는 파격적인 전술을 꺼냈다. 이와 관련, 벨 감독은 ‘젊은 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벨 감독은 “페어가 최전방, 천가람은 우측에서 어떻게 움직일지 다 생각해뒀다. 젊은 선수의 열정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우리에게도 젊은 피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는 미래를 봐야 한다. (현재 팀에) 30대 중반의 선수들이 많이 있으니 새로운 팀을 만들 때가 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경기를 잘 치를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이제 다시 집중할 때다. 우리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점검하겠다”며 “어떻게 하면 선수들의 능력을 최대로 올릴지 따져보겠다”고 덧붙였다.
한국이 독일과 비기면서 H조에서는 콜롬비아와 모로코(이상 2승 1패)가 조 1, 2위로 16강에 올랐다. 독일은 이 대회 사상 최초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영국계 독일인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독일에서 지도자 생활을 한 벨 감독은 “솔직히 말씀드리겠다. 독일이 조 3위가 될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 팀을 아는 만큼 독일을 안다”며 “독일 경기를 챙겨보며 모든 시나리오를 분석했고, 어떻게 대응할지도 다 생각해뒀다”고 힘줘 말했다.
아울러 벨 감독은 일본을 비롯해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자메이카 등 ‘축구 변방’으로 인식되는 팀들이 16강행을 이룬 현상에 대한 비평도 내놨다.
벨 감독은 “아프리카 팀들은 열정, 체력, 정신력을 보여줬다. 특히 속도나 체력은 엄청난 것 같다”며 “콜롬비아, 모로코도 그렇다. 이런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오늘 모로코가 콜롬비아를 이겼다는 사실도 놀랍지 않다”며 “체력 측면에서 여자축구의 전반적인 수준이 많이 높아졌다. 세계적으로 여자축구의 미래가 밝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 막판이 되자 벨 감독은 자신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고강도’를 한 번 더 강조했다.
벨 감독은 “고강도 경기를 치르면서 빠른 속도를 보여주지 못하면 현대축구에서는 기회를 얻을 수 없다”며 “정신력 면에서도 고강도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강도의 원어인 ‘하이-인텐서티’(high-intensity)는 유럽 지도자들이 자주 쓰는 단어로, 점점 빨라지고 격렬해지는 여자축구의 추세를 함축하는 말이다.
벨 감독은 이를 자신의 축구 철학을 삼고, 한국 대표팀에 이식하려 했다. 벨 감독은 “너무 많은 걸 높은 강도로 요구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제 무대에서는 그래야 한다”며 “콜롬비아·모로코전에 그러지 못해 언론에서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난 선수들이 더 나은 경기를 할 능력이 있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선수들이 압박감, 부담감에 힘겨워한 가운데 16강에 오르지 못한 상황에는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