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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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달’

2023-07-25 (화)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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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단체 모임같이 수런대는 곳에서
맨 구석 자리에 앉아 보일 듯 말 듯
몇 번 웃고 마는 사람처럼
예식장에서 주례가 벗어놓고 간
흰 면장갑이거나
그 포개진 면에 잠시 머무는
미지근한 체온 같다 할까
또는, 옷장 속
슬쩍 일별만 할 뿐 입지 않는 옷들이나
그 옷 사이 근근이 남아 있는
희미한 나프탈렌 냄새라 할까
어떻든
단체 사진 속 맨 뒷줄에서
얼굴 다 가려진 채
정수리와 어깨로만 파악되는
긴가민가한 이름이어도 좋겠다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오래된 흰죽 같은,

‘낮달’ 이규리

보일 듯 말 듯, 미지근하고, 근근하고, 희미하고, 긴가민가하고, 있는가 하면 없고, 없는가 하면 있는 것들이 세상의 주연인지도 모른다. 언제나 주목을 끌고, 화끈해 보이고, 딱 부러지게 말하던 이들은 대개 스포트라이트가 꺼지면 보이지 않는다. 낮달 같은 이들은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어둠이 올 때 비로소 빛을 낸다. 보이지 않는 꿋꿋한 뒷면을 지니고 있다.
반칠환 [시인]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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