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보통 외교정책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건 다행스런 일이다. 외교분야에 비중을 두다보면 무분별한 공약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공화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지명전에 나선 유력 주자들이 이런저런 형태로 지지의사를 밝힌 대외정책 공약을 살펴보라. 이들은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상대로 사실상 전쟁을 선포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면 군사력을 투입해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고, 해군을 동원한 “철저한 해상봉쇄”로 선박을 이용한 마약 밀반입을 막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공화당내 유일한 흑인 상원의원으로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팀 스콧(사우스캐롤라이나) 역시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이용해 마약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다. 최근 실시된 여론 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유권자들은 이같은 군사조치를 강력히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여론의 동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공화당 후보들의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 발언은 시간이 지날수록 빈도와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마약 문제는 화급을 다투는 중대 사안이다. 집계가 완료된 최신 자료인 2021년도 통계에 따르면 아편성분을 합성한 오피오이드계 진통제 과다복용으로 같은 해 미국에서만 7만여 명이 사망했다. 이들 중 가장 많이 팔리는 펜타닐은 헤로인과 유사하지만 그보다 약효가 훨씬 강하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마약은 대부분은 멕시코의 카르텔에 의해 제조된다. 그러나 군사력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한다는 발상은 망상에 불과하다.
첫째, 군사력 사용은 멕시코에 대한 전쟁행위다. 멕시코 정부는 군사력에 의존하는 미국의 마약문제 해법에 분명하고도 완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런 와중에 미국의 정치인들이 마약 카르텔 분쇄를 위한 무력사용을 천명하는 것은 멕시코 정부를 자극해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 뿐이다. 포퓰리스트 성향의 멕시코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즈 오브라도르는 이들의 발언을 반미 민족주의 정서를 부추기는 연료로 사용할 것이다.
둘째, 군사력 사용은 해법이 아니다. 스콧 의원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던 20년 동안 현지의 마약 거래를 중단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을까? 멕시코의 상황은 아프가니스탄과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만큼 심각하다. 어마어마한 자금력과 막강한 무장조직을 지닌 마약 카르텔의 근거지는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광활한 ‘무인지대’로 국경너머로 마약을 이동시킬 수 있는 다양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 카르텔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행동은 현지는 물론 미국까지 불안정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군사개입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를 목격한 바 있다. 단언하건대 멕시코에 군사력을 사용할 경우 수백만 명의 난민이 미국 국경으로 쇄도할 것이다. 멕시코 남부를 대상으로 공습을 감행한다면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밀려들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처럼 혼란한 상황을 틈타 무장한 마약 조직원들과 현지의 조직폭력배들이 뿔뿔이 흩어져 난민대열에 합세하거나 소그룹으로 나뉘어 밀입국을 시도하는 방식으로 국경을 넘어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멕시코가 아닌 미국에서 벌어지게 된다.
리처드 닉슨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지 50주년이 되던 해인 2년전, 어떤 잣대를 적용하느냐에 상관없이 그의 노력이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는 몇몇 연구결과가 나왔다. 마약 단속에 무려 1조 달러의 경비를 지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과용에 따른 사망자 수는 극적으로 늘어났고, 전국의 교도시설은 마약사범들로 포화상태를 이루었다. 미국의 인구는 세계 전체 인구의 5%에 불과하지만 수감자 수는 전체의 20%를 차지한다. 여기에 덧붙여 매년 마약소지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는 숫자만도 100만 명을 웃돈다.
마약과의 전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것이 라틴 아메리카에 미칠 영향을 간과한다. 마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미국의 노력은 중남미 국가 군부세력의 힘을 키운 반면 시민사회와 민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고 법에 의한 지배 원칙을 훼손했다. 그 결과 라틴아메리카 사회 전체가 부패에 감염됐는데, 그중에서도 정부조직과 카르텔 세력이 깊숙이 얽힌 멕시코가 감염 속도가 가장 빠른 국가로 지목된다.
일부에서는 ‘플랜 콜롬비아’를 마약과의 전쟁에서 거둔 최대 성과로 간주한다. 2000년 이후, 워싱턴은 마약 카르텔 소탕전에 나선 콜롬비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총 120억 달러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 결과 콜롬비아의 코카 재배는 한동안 주춤했지만 얼마가지 않아 맹렬한 기세를 회복했다. 게다가 콜롬비아 플랜은 페루와 볼리비아의 마약 생산을 부추기는 효과를 가져왔다. 실제로 정부의 군사작전이 시작되면서 마약 거래의 중심축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콜롬비아에서 페루와 볼리비아로 이동했다. 이게 바로 전문가들이 말하는 ‘풍선 효과’다. 풍선 효과 대신 ‘자본주의 101’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충족되지 않는 마약 수요가 존재한다면 어디선가 공급자가 나타나는 것이 자본주의의 작동원리다.
미국의 펜타닐 참극을 해결하기 위해선 시간과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실 국내 의사들은 마약성분의 진통제를 너무 자주 처방한다. 2019년도 연구에 따르면 수술을 받고 회복중인 미국과 캐나다의 환자들은 스웨덴 환자들에 비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을 가능성이 7배나 높다. 반면 약물치료와 재활 프로그램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나치게 적을 뿐 아니라 만성적인 예산부족에 시달린다. 금단현상 완화에 도움이 되는 약품은 탁월한 효력이 입증된 상태지만 워낙 가격이 비싸 이를 필요로 하는 미국인 환자 4명 가운데 한 명만이 사용할 수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현실적인 다른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 전쟁을 벌이자고 목청을 높이는 편이 쉽다. 이게 단지 선거전에 국한된 광증이기를 바란다. 만약 무분별한 협박을 현실로 만들려 든다면 향후 수십 년간 혼란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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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