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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름

2023-07-10 (월) 안미정 / 테이크루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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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지어준 내 이름 석 자가 Mijung An으로 불리기 시작한 지도 벌써 12년 차다. 커피숍에선 에이미(Ami), 식당 예약 시스템에서는 MJ, SNS 닉네임은 실비아를 쓴다는 것을 포함하면 나는 현재 네 개의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이름을 네 개씩이나 갖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미국생활 초반에 즐겨 찾던 커피숍에서 주문자의 이름을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내 이름을 알아듣거나 제대로 읽어주는 바리스타가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줄지어 선 주문 대기자들을 뒤로하고 내 이름 알파벳 여섯 글자를 일일이 불러주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러다가 주문한 커피만 잘 나오면 된다는 마음으로 성의 A와 이름의 Mi를 따서 에이미 Ami를 지었다. 식당 예약을 할 때도 Ami를 쓰면 되었는데 내가 처음 살았던 미국 동네에는 유난히 에이미가 많았다. 분초를 다투는 테이블 차지 경쟁에서 중복을 피하기 위해 식당 예약만을 위한 MJ라는 이름을 따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실비아라는 이름은 엄마가 나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내가 지은 이름은 아니지만 참 정겨운 이름이 되었다.

사실 그 밖에도 나는 몇 개의 이름을 더 가지고 있다. 후자의 이름들이 전자의 이름들과 다른 점은 내 의사와는 관계없이 타인에 의해 명명되었다는 것이다. 한인사회에서의 OO부인, OO 엄마가 그렇다. 아이 이름이 겹치는 경우 나는 OO엄마 2가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이름들에 쉽게 정을 주지 못한다. 내가 지은 이름이 아닐 뿐더러 역할만을 강조하는 호칭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다가 잘 따져보면 실용적이지도 않다. 한 예로 OO부인의 이름 체계를 따르려면 우선 남편의 이름과 호칭을 정확하게 부른 뒤에 부인을 붙여야하는데 이는 내 이름 세 글자보다 훨씬 길다. 이 이름들은 또한 역할만으론 드러나지 않는 나의 정체성을 흐리게 한다. 그리고 흐려진 정체성만큼이나 옅어진 나의 존재감도 하염없이 작아진다.

여러 개의 이름 중 내가 불리고픈 이름은 안미정이다. 너무 평범해서 간혹 민정으로 잘못 읽히기도 하는 내 이름. 나만 아는 갖은 방법으로 가꿔온 내 이름을 나는 정말로 사랑한다. 해외 이주 생활을 통해 내 이름을 지키기 위해선 여러 경계들을 넘나들 수 있는 친절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의지가 있는 타인에게 내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가르쳐주고, 또 공들여 알파벳을 하나하나 불러주는 여유 말이다. 서로의 이름을 묻는 친절함이 일상이 되는 어느 날을 꿈꿔보며 나는 오늘도 묻는다. 당신을 어떤 이름으로 불리길 원하나요?

<안미정 / 테이크루트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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