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노블레스 오블리주’

2023-07-03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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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가 에스더 왕후를 찾아와 말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동족이 직면한 생존의 위기를 염려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에스더는 자기 한 사람의 목숨보다 유대인 전체의 운명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에스더 왕후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왕에게 나아가기로 결심했다. 지금 자신이 왕후의 자리에 있는 것이 위기에 처한 동족을 구원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자각했고, 즉시 자기희생의 길로 들어섰다.” (H. A. 아이언사이드의 ‘에스더 강해’ 중에서)

큰 권력과 부(富)를 가진 기득권층이 평범한 서민을 위하여 희생하는 경우는 예나 지금이나 흔하지 않다. 엘리트로 회자되는 사람들의 겸허한 희생 행위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라고 한다. 목숨을 건 에스더 왕후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놀라운 결과를 낳았다. 유대인을 멸망시키려는 하만의 음모로부터 동족을 구원했고, 인류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

에드워드 3세는 백년 전쟁 당시 영국 왕이다. 전쟁이 시작 된지 3년 쯤 되었을 때 영국은 승기를 잡았다. 에드워드 3세는 지체하지 않고 대서양을 마주 보고 있는 전략도시 칼레(Calais) 시를 기습했다. 칼레 시는 철옹성으로 유명했지만 1년 동안이나 포위하고 끈질기게 공격하는 에드워드 3세의 영국 군대를 막아낼 수 없었다.


마침내 칼레 시민 대표는 에드워드 3세에게 무조건 항복의사를 전했다. 1년 동안 끈질기게 저항하던 칼레 시민을 괘씸히 여긴 에드워드 3세는 엄격한 항복 조건을 제시했다. 칼레 시를 대표하는 지도자 여섯 명의 목숨을 내놓을 경우 항복을 수용하고 시민 전체의 생명을 보존해 주겠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한 칼레 시민들은 의외로 차분했다. 목숨을 내놓을 지원자가 많았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나선 사람은 칼레 시에서 가장 부자인 드 생 피에르(de Saint Pierre)이었다. 그 뒤를 이어 여섯 명의 지원자가 나섰다. 결국 지원자가 일곱 명이 되어 그 중 한 명의 목숨은 건질 수 있게 되었다.

다음 날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을 목숨을 건질 자로 정하고 그의 목숨은 살려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다음 날 아침이다. 여섯 명의 시민 대표가 광장에 모였는데 드 생 피에르만 보이질 않았다. 하루 사이에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시민들이 드 생 피에르의 집에 가본 후에야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알았다. 시민들은 모두 놀랐고 감격했다. 에드워드 3세도 이 소문을 듣고 감동했다. 에드워드 3세는 즉시 자신의 제안을 철회했다.

약속대로 칼레 시민의 목숨은 보전 받았다. 이 고사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문장은 태어났다. 이 시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길을 가는 리더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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