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채한도 위기는 “국가의 기능이 장애를 일으켰다”는 뻔한 논평에 물길을 터주었다. 하지만 자해 행위에 해당하는 이런 광기어린 정치극의 배경은 놀랄 만큼 강력한 미국의 힘이다.
이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은 주요 경제국들 가운데 가장 빨리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에서 벗어났다. 최근 블룸버그의 매튜 A. 윙클러가 지적했듯 미국의 실업률은 놀랄만큼 낮은 수준이고, 국내총생산(GDP)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에 비해 평균 3배나 빠른 성장속도를 기록 중이다. 실질임금이 오르고, 제조업이 활기를 띄우고 있으며 인플레이션은 10개월 연속 완화됐다. 심지어 트럼프 행정부 말기에 GDP의 15.6% 수준이었던 예산적자도 5.5%로 떨어졌다.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욱 긍정적이다. 미국은 비즈니스, 특히 최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인 스캔 스타스와 스티븐 G. 브룩스는 지구촌의 상위 2,000개 기업 가운데 중국 업체들이 최고 수익을 올리는 종목은 전체의 11%에 불과한 반면 미국 기업들은 74%에 해당하는 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모든 산업을 새롭게 틀 지을 첨단 테크놀로지의 총아로 떠오른 인공 지능(AI) 분야에서도 미국 기업들이 눈부신 약진을 펼치고 있다. OpenAI,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은 이미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앱을 시장에 내놓았고, 숱한 신생업체들도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다. 폴 샤르는 포린 어페어즈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인공지능 연구논문을 발표한 15개 기관 가운데 13개가 미국의 대학과 연구소인데 비해 중국은 칭화대학 단 한 곳뿐”이라고 지적했다. 연구 논문 발표건수는 중국이 미국에 압도적으로 앞서지만 미국 측 논문의 인용횟수가 70%이상 많았다. 게다가 AI 개발과 사용에 필수적인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의 접근이 봉쇄된 상황이기 때문에 미국의 독주에 극적인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부분의 사정도 다를 바 없다. 최근 몇몇 은행의 도산에도 불구하고 미국 최대 은행들의 세계 금융시장 장악력은 오히려 확대됐다. 강도 높은 스트레스 테스트를 거치고 자본준비금을 확충한 결과 미국의 대형은행들은 유럽과 일본 은행에 비해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서있다. 정부의 거대한 빚더미를 짊어진 중국의 관영은행들은 개방된 글로벌 금융시스템 아래서는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중국인들이 다투어 그들의 자금을 안전한 투자처로 이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미국 달러화의 위상을 떨어뜨리려는 숱한 시도에도 불구하고 달러화는 글로벌 기축통화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을 세계 금융계의 수퍼파워로 떠받치는 힘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미국은 에너지 강국으로 자리매김했다. 프랙킹과 천연가스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대 액체 탄화수소 생산국으로 떠올랐다. 콜롬비아대학의 제이슨 보르도프 교수는 액화 천연가스 수출 역량이 미국을 에너지 초강대국으로 띄워 올렸다고 지적하고 “이제 우리는 특정 국가에 에너지를 공급하거나 차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됐다”고 덧붙였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포함된 방대한 세제혜택과 인센티브가 한몫 단단히 거들면서 전통적인 에너지원 이외에 청정에너지 생산량도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을 종합해보면 미국의 에너지 역량이 어느 정도일지 뚜렷한 그림이 나올 것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가히 독보적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아직은 미국의 맞수가 아니다. 중국이 빠른 속도로 따라오고 있기는 하지만 여러 차원에서 전투력의 격차가 있다. 공화당 외교정책 보좌관인 코리 샤크의 분석대로 미국은 따로 병력을 파견하지 않고도 최소한의 경비만으로 러시아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또한 워싱턴은 우크라이나군을 유럽의 최강 정예군으로 탈바꿈시키면서 또 하나의 강력한 우방을 만들어내고 있다.
미국의 국력을 키우는 최대 승수는 우방국들과의 조약 동맹체다. 미국과 동맹조약을 체결한 국가는 50개국에 달한다. 반면 중국의 동맹국은 북한이 유일하다. 미국이 지구촌 곳곳에 750개의 군사기지를 두고 있는데 비해 중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아프리카 동부의 지부티 단 한 곳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막강한 힘을 보여주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미국은 튼실한 취업연령 인구를 거느리고 있다. 활발한 이민인구 유입으로 미국의 노동력은 좀처럼 위축되지 않는다. 아직도 미국은 매년 평균 100만 명의 합법적 이민자들을 받아들인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뒤집기 힘든 인구감소 추세에 직면한 상태다. 이같은 인구감소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하게 된다.
미국의 막강한 국력은 워싱턴의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이 보이는 광기어린 정치적 연극의 배경을 이룬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 자국의 국가신용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간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되기 때문에 자제와 규율의 매커니즘이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워싱턴의 경우 내구력이 강한 견고한 국력이 정치인들에게 무책임을 허용하는 면허증을 제공하고 있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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