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서칼럼 - ‘침묵 속에서 인간은 다시 태어난다’

2023-05-22 (월)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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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속에 있을 때 인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 같지만, 최초의 말과 함께 그는 다시 태어난다. 오랜 침묵 뒤에 다시 말하기 시작한 사람을 잘 보면 그는 마치 말에 의해서 이제 막 눈앞에 나온 것처럼 보인다. 인간은 말을 통해서 새로 확인되는 것이다.

침묵은 말이 없이도 존재할 수 있지만, 침묵이 없이는 말이 존재할 수 없다. 말에게 침묵이라는 배경이 없다면 말은 아무런 깊이도 가지지 못한다. 침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을 인간이 되게 해주었던 말을 단념하고 새로 시작한다. 자신을 다시 태어나게 할 말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존 샌포드의 ‘홀로 있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중에서)

침묵은 도피이거나 수동적 삶의 행위가 아니다. 침묵은 하나님이 나를 가르치시도록 내면을 개방하고 비우는 능동태다. 침묵은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용수철처럼 잠시 웅크리는 준비의 시간이다. 침묵 없는 영혼은 불안하다. 인생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깊은 숲속의 호랑이처럼 ‘솔리튜드(solitude)의 근력’을 키우라.

침묵 속에서 인간은 지금까지 자신을 만들었던 언어를 무너트린다. 침묵 안에서 새로운 언어를 찾아내고 다시 태어난다. 광야로 나간 예수는 금식으로 자신을 무너트리신 후 새로운 신적 언어로 사단을 제압하고 메시아이심을 보여주었다.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다. 예수는 인류의 구원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 위에서 침묵으로 자신을 무너트렸다. 부활하신 후 온 인류에게 자신이 구원자이심을 증명했다.
파스칼(Pascal)은 오랜 침묵의 시간을 가진 후에야 단편 메모리알(Memorial)을 얻었다.

침묵의 시간동안 파스칼은 지금까지 자신이 되게 만들었던 사상과 언어를 단호하게 단념하고 파괴했다. 다시 태어나게 할 새 사상과 새 말이 주어질 것이라고 믿으면서.

현대인은 홀로 침묵의 시간 속에 머물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장엄하고 신비한 자기 부활을 체험하지 못한다. 홀로 침묵의 시간을 갖는 데는 자기 파괴의 용기와 정직이 필요하다. 다시 태어나기 위하여.

<김창만/목사·AG 뉴욕신학대학(원)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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