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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퀴벌레일까…아이돌도 받는 Z세대 ‘웃픈’ 질문놀이

2023-05-10 (수)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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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바퀴벌레일까…아이돌도 받는 Z세대 ‘웃픈’ 질문놀이
왜 바퀴벌레일까…아이돌도 받는 Z세대 ‘웃픈’ 질문놀이

부모와 자식간에 주고받은 ‘바퀴벌레 질문’ 카카오톡 대화 내용. [독자 제공]


K팝 아이돌들은 요즘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갑자기 팬들이 바퀴벌레가 된다면 어떻게 하실거예요?” 뜬금없는 물음에 아이돌 대부분은 놀란 토끼 눈을 하고“네?”라고 되묻기 일쑤다. 당황할 틈도 없이‘요즘 가장 유행하는 질문’이라며 우격다짐으로 대답을 요구받고 나면 그때부터 아이돌들의 아무 말 대잔치는 시작된다.“(팬을) 바퀴벌레로 만든 마법사를 찾아 혼쭐내 준 뒤 마법을 풀어주겠다”(샤이니 태민)부터“집에서 키우겠다”(비투비 서은광)까지. 이 엉뚱한 답변들을 공유하며 K팝 팬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성격을 성격유형지표(MBTI)처럼 추론하며 즐겼다. 동시에 K팝 아이돌이 팬, 즉 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를 그 답변으로 확인하려 했다.

■2,600만 명이 본 질문의 정체

이런 움직임은 Z세대(1997~2012년생)를 중심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바퀴벌레 질문 놀이'에서 비롯됐다.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자식들은 이런 질문을 부모에게 하고, 받은 답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너도나도 올렸다. 1일 기준 인스타그램에 ‘바퀴벌레' 해시태그를 달고 올라온 게시물은 1만8,000여 건.

“지금도 모습만 인간이지 네 방이 바퀴벌레 소굴과 차이가 없는 너를 사랑하는데, 지금처럼 사랑하겠지" 등 감동이 넘치는 부모의 답변은 온라인에 성경 구절처럼 공유되고 있다.

이 이상한 질문 놀이는 한 네티즌이 지난 3월 SNS에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그는 카프카의 소설 ‘변신'을 읽고 “자고 일어났는데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떡할 거냐"고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는 “너인 줄 알면 사랑하겠지"라고 답했다. 이 글은 이날 기준 조회수 2,600만 건을 넘어섰다. 바퀴벌레 질문 놀이가 ‘밈'(meme·온라인에서 유행하는 콘텐츠)이 된 배경이다.

■박멸 대상인데… Z세대가 동일시하는 이유

바퀴벌레 질문이 유행으로까지 번진 데는 Z세대의 사회적 도태에 대한 불안이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고용 불안전성은 부쩍 높아졌다. 이른바 초불확실성 시대를 맞아 개인의 생존에 대한 안전망을 더 이상 사회가 제공해 주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과 불신이 바퀴벌레 질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

윤김지영 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해충, 쓸모없음과 더러움, 박멸의 대상으로 상징되는 바퀴벌레와 Z세대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상황이 언제든 하락할 수 있음에 대한 공포감의 표현이자 언제든 바퀴벌레 같은 무가치한 존재로 추락할 수 있다는 두려움의 반영"이라고 바라봤다.

Z세대가 쏘아 올린 바퀴벌레 질문은 부모에게로 향한다. 이는 그야말로 한 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시대에 ‘나'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만이 책임져 줄 수 있다고 믿는 가족주의적 생존 사고가 그만큼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박유선(23)씨는 “살다 보니 혼자 동떨어진 기분이 들었다"며 “엄마가 ‘징그러워도 먹이 주고 같이 살겠다'고 답을 하니 언제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데 감정이 북받쳐 오르더라"고 말했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는 “바퀴벌레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번식력과 생존력을 자랑하지만 아무도 좋아하지 않아 존재를 강력하게 부정당한다"며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가졌다는 Z세대가 바퀴벌레로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은 사회에서 미움 받는다고 여기는 그들이 ‘1인분'이라 강조하는 제 역할을 찾지 못하는 세태에 대한 역설"이라고 분석했다.

■바퀴벌레처럼 묘사된 ‘기생충’ 가족 MBTI 다큐와 상관관계

바퀴벌레 질문 놀이 유행에 대한 징후는 대중문화에서 그간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다. 영화 ‘기생충'에서 반지하에 사는 기택(송강호)의 네 식구는 주인집 가족이 외출하면 그 집에 바퀴벌레처럼 모였다가 주인집 가족이 들어오면 다시 지하로 숨어 들어간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지난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MBTI vs 사주'(티빙)가 공개돼 입소문을 타고 있는 것도 바퀴벌레 질문 유행과 흐름을 같이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바퀴벌레 질문 놀이와 MBTI 열풍은 팬데믹으로 관계가 2년 넘게 끊긴 청년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열망과 맞닿아 있다"며 “지금 처한 어려움이 내가 잘못해서라기보다 그런 환경이 주어진 탓이란 울분도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은 “Z세대가 바퀴벌레 질문 놀이에 열광하는 것은 온갖 어려움에도 바퀴벌레처럼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읽힌다"고 말했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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