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품·감독상·남녀조연상 등 휩쓸어…반전영화 ‘서부전선’ 4개 부문 트로피
▶ 남우주연상 ‘더 웨일’의 프레이저… “아시아권 영화 강세 이어져” 분석
환갑 맞은 양쯔충 “여성들이여, 황금기 지났다는 말 믿지 마시길”
말레이시아계 배우 앙쯔충(양자경)이 12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영화상(오스카상) 시상식에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여우주연상을 받은 뒤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시아계 배우가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이터=사진제공]
올해 아카데미(오스카)에 이변은 없었다.
이번 오스카 무대에서 10개 부문·11개 최종 후보에 올랐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이하 에브리씽)는 작품상과 감독상 등 7개 부문의 트로피를 차지하며 최다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2일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에브리씽'은 작품상과 감독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 각본상, 여우조연상, 남우조연상. 편집상 등 7개 부문을 휩쓸었다.
2020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4관왕을 계기로 오스카 무대에서 두드러진 아시아권 영화의 강세가 올해는 '에브리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 이민 1세인 에벌린(양쯔충 분)이 다중 우주를 넘나들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이 겪는 현실적 고충과 세대 갈등을 SF 장르로 풀어내며 호평받았다.
'에브리씽'의 프로듀서 조너선 왕은 작품상 트로피를 받고서 "정말 많은 이민자의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다"며 "제 아버지께서는 '항상 수익보다 사람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보다 중요한 개인은 없다'는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셨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여기에 계신 모든 분이 그 이야기를 같이해주신 것 같아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듀오' 대니얼 셰이너트와 함께 감독상을 받은 대니얼 콴 감독도 "이민자로 오신 부모님, 특히 영화광 재능을 물려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며 "저희가 이런 상을 받는 것도 정상은 아니다. 여러분들께서도 기준에 맞추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했다.
여우주연상을 받은 양쯔충은 아시아계 배우 처음으로 오스카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기록을 쓰게 됐다. 1962년생으로 올해 환갑인 그는 말레이시아 출신이다.
양쯔충은 수상 무대에 올라 "여성 여러분, 여러분들은 황금기가 지났다는 말을 절대 믿지 마시기를 바란다"며 "이 상을 제 엄마께 바친다. 모든 전 세계 어머니들께 바친다. 왜냐면 그분들이 바로 영웅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80∼90년대 홍콩 액션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당대 그가 출연한 '예스마담' 시리즈는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다. 할리우드에 진출해서는 '007 네버다이'(1998), '와호장룡'(2000), '쿵푸팬더2' 등 작품활동을 꾸준히 이어왔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시아권의 문화적 정서가 들어간 작품, 그런 정서가 주는 새로움이 더해져서 아카데미가 이제는 좀 달라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우주연상은 '더 웨일'에서 272㎏의 거구 '찰리'를 연기한 브렌던 프레이저가 차지했다.
그는 과거 영화 '미이라' 시리즈로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으나, 촬영 중 부상과 수술, 할리우드 고위급 인사의 성추행 피해, 이혼 등으로 활동을 사실상 중단했다.
그는 복귀작이나 마찬가지인 '더 웨일'로 화려한 부활을 알리게 됐다.
프레이저는 호명 뒤 무대에 올라 울먹이며 "아카데미 측에 이 영예 주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님에게도 '더 웨일'에 합류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감격해했다.
'더 웨일'은 프레이저를 어마어마한 체중의 찰리로 변신하게 한 특수분장 기법이 조명받으며 이번 오스카에서 '분장상'을 차지했다.
남녀조연상의 주인공도 '에브리씽'이었다.
남우조연상은 '에브리씽'에서 에벌린의 남편 웨이먼드 역을 연기한 키 호이 콴이, 여우조연상은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로 분한 제이미 리 커티스가 수상했다.
키 호이 콴은 수상 무대에서 "엄마가 74살이시다. 집에서 시상식을 보고 있다"면서 "엄마 저 오스카상 탔어요"라고 크게 환호했다.
올해 오스카에서는 넷플릭스의 반전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이하 서부전선)가 촬영상과 미술상, 음악상, 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 수상자를 내며 '에브리씽'에 이어 많은 트로피를 챙겼다.
이 작품은 세계 제1차대전 중 서부전선으로 투입된 고향 친구 4명이 전장에서 겪는 참혹함을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해내 호평받았다.
다만 '서부 전선'과 함께 9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던 '이니셰린의 밴시'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파벨만스', 로큰롤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일대기를 그린 '엘비스'는 무관에 그쳤다.
블록버스터로 오스카 작품상 후보에 오른 '아바타: 물의 길'과 '탑건: 매버릭'은 작품상 대신 각각 시각효과상과 음향상을 받으며 체면치레했다.
올해 아카데미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독살 시도를 다룬 다큐 '나발니'가 장편 다큐부문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정치적 색채를 잘 드러내지 않아 온 아카데미에서는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거세게 비난해온 미국 내 정서가 수상작 선정에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시상식에서는 웃음과 감동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사회자 지미 키멀은 진행 중 영화 '이니셰린의 밴시' 속 파우릭 역의 콜린 패럴이 키우던 당나귀 제니를 다정하게 끌고 나왔고, 시각효과상 시상자 중 한명은 불곰으로 분장한 채 무대로 올라와 웃음을 줬다.
가수 리한나는 '블랙 팬서2'의 주제가 '리프트 미 업'을 공연하며 전편 주인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채드윅 보즈먼을 추모했다.
작년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청각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는 올해는 시상자로 나서 남녀조연상 수상자를 수화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