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타 현장 동영상 공개 “목 골절·온몸 멍투성이”
▶ 연루 경찰 5명 살인혐의 기소
타일러 니컬스 사망 후 체포 당시 동영상이 공개된 27일 전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열렸다. 이날 뉴욕 맨해턴에 모인 시위대가 경 찰 폭력에 항의하고 있다. <로이터>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교통 단속 중이던 경찰관들이 흑인 남성 운전자 타이어 니컬스(29)를 집단 구타해 숨지게 한 상황을 고스란히 담은 상세한 영상이 27일 공개되며 미국 사회가 발칵 뒤집어졌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분노를 표출하며 체포 과정의 철저한 진상 조사를 지시한 가운데, 미국 전역에서 규탄 시위가 들끓을 조짐을 보이며 일순간에 폭풍 전야의 긴장감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이 사건으로 제2의 ‘로드니 킹’ 이나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비화될 우려가 제기되면서 전국 치안기관들에 비상이 걸렸다.
테네시주 멤피스 경찰은 지난 7일 흑인 청년 타이어 니컬스(29)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당시 상황이 담긴 약 67분 분량의 '보디캠'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을 보면, 오후 8시30분께 해가 져 깜깜한 가운데, 난폭 운전으로 정지 지시를 받아 길가에 멈춰선 니컬스의 세단 자동차로 경찰관들이 달려갔다.
한 경관이 운전석 문을 열고는 니컬스의 멱살을 잡고 그를 끌어내자, 니컬스는 "나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라고 항변했다. 경찰관들은 "바닥에 엎드려"라고 수차례 소리치고, 니컬스는 "알았다"라고 답했다.
잠시 후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니컬스와 몸싸움이 벌어지자 경찰관 2명이 "손을 내밀라"고 요구하며 제압하려다 그를 에워싸고 동시에 주먹과 발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어 옆에 서 있던 다른 경찰관이 통증과 눈물을 유발하는 '페퍼 스프레이'를 꺼내 얼굴에 뿌리자 이를 맞은 니컬스는 "엄마"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한 경찰관은 "너한테 몽둥이질을 해주겠다"고 말하고는 진압봉을 꺼내들어 위협을 가했고, 축 늘어진 니컬스가 붙들어 일으켜지자 다른 경찰관은 얼굴에 폭행을 이어갔다.
현장에서 니컬스에 몰매를 가한 경찰관 5명은 모두 흑인이었다. 니컬스는 체포된 후 고통을 호소하며 병원으로 옮겨졌고, 사흘 뒤인 10일 신부전과 심장마비로 숨졌다. 그는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앓고 있었다.
해당 경찰관들은 모두 해고됐으며, 대배심은 전날 이들을 2급 살인과 가중 폭행 등 혐의로 기소할 것을 결정했다.
세를린 데이비스 멤피스 경찰서장은 AP 인터뷰에서 "경찰관들의 행동은 악랄하고 난폭했으며 비인도적이었다"고 비판하며, 체포 당시 니컬스에게 적용된 혐의인 난폭 운전과 관련해 보디캠에 촬영된 영상은 없다고 전했다.
데이비스 서장은 니컬스의 차량이 처음 정차했을 때부터 경찰관 10명가량이 몰려들었다며 "이들이 공격적이고 소란스러운데다 욕설 표현을 사용하는 바람에 니컬스가 처음부터 매우 겁먹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멤피스와 워싱턴DC, 뉴욕, 로스앤젤레스, 보스턴 등 도시에서는 경찰의 과잉 진압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거리에서 행진을 벌였다.
뉴욕에서는 시위대 일부가 경찰과 충돌했다. NBC방송은 28일 뉴욕경찰(NYPD)이 전날 저녁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 발생한 폭력시위와 관련해 뉴욕시민 3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시위대가 경찰과 대치했다. LA 경찰서 앞에는 시위대의 진입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무장경찰이 배치됐지만, 일부 시위대는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경찰차를 흔드는 등 위협적인 행동을 했다.
흑인 운전자 사망사건이 발생한 멤피스에선 시위대 때문에 인근 고속도로 운행이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니컬스의 죽음을 불러온 구타가 담긴 끔찍한 영상을 보고 격분했으며, 깊은 고통을 느꼈다"며 "검은색이나 갈색 피부를 가진 미국인들이 매일같이 겪는 공포와 고통, 상처와 피로감을 되새기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상에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은 정당하다"면서도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폭력이나 파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했다.
그는 "폭력은 불법적이며 파괴적으로,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니컬스의 유족과 마찬가지로 시위가 평화롭게 진행되기를 촉구한다"고 재차 강조하며,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신속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앞서 니컬스의 모친, 계부와 통화하고 고인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니컬스의 어머니 로번 웰스는 CNN 방송 인터뷰에서 "그들은 아들을 가혹하게 구타했다"며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머리는 수박만큼 부어올랐으며, 목은 부러져 있었고, 코는 'S'자로 휘었다. 살아남았더라도 식물인간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웰스도 ABC 방송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도시를 불태우고 거리를 파괴하는 것은 원치 않으며, 내 아들도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나와 타이어를 위해 함께한다면, 평화적으로 시위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