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비 커지고 후반 작업시간 확보 용이해… “장르물의 미래”
▶ ‘닥터브레인’·’고요의 바다’ 등은 반향 적어… “우리만의 문법 찾아야”
OTT 드라마 ‘욘더’, ‘커넥트’ [티빙·디즈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대가 열리면서 TV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SF 드라마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
23일(한국시간) OTT 업계에 따르며 이달 외계인을 소재로 한 넷플릭스 시리즈 '글리치'에 이어 2032년을 배경으로 죽음 이후의 세계를 다룬 티빙의 '욘더'가 잇따라 공개됐다.
연말에는 디즈니+가 일본 미이케 다카시 감독과 정해인·고경표·김혜준 한국 배우들이 합을 맞춘 SF 드라마 '커넥트'를 선보인다. '커넥트'는 죽지 않는 몸을 가진 새로운 인류를 주인공으로 삼는다.
SF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 상상력에 이야기의 기반을 두기 때문에 서사를 촘촘하게 쌓아야 하고, 과학적인 논리에 비약이 없도록 이야기를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외계인이나 우주, 미래에 사용되는 디바이스 등을 실감 나게 구현해야 해서 작업이 까다로운 장르로 꼽힌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CG)이나 시각특수효과(VFX)가 정교하지 않으면 극의 몰입도가 깨지기 때문에 후반작업에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이는 드라마 촬영과 TV 방영이 거의 동시에 진행되던 이른바 '쪽대본' 시절에 SF 드라마가 나오기 힘들었던 이유기도 하다.
최근에는 TV 드라마도 사전 제작 시스템이 보편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SF 장르를 선보이는 데는 소극적인 편이다. TV 방송 특성상 소수의 마니아층보다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 수 있는 작품을 편성해야 해서다.
반면 TV보다 후반작업 시간에 여유가 있고, 주제나 표현 방식에 제한이 덜해 창작자가 세계를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OTT는 SF 드라마에 관심이 크다.
SF 드라마는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각 OTT 플랫폼이 얼마나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잣대로도 통한다.
넷플릭스는 한국 첫 우주 SF 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지난해 12월 선보였다.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 장르물의 새 지평을 연 만큼 그간 시도되지 않았던 우주 배경 드라마로 트렌드를 선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애플TV+와 디즈니+도 이에 질세라 차례로 SF 드라마를 내놨다.
애플TV+는 첫 한국 콘텐츠로 뇌에 담긴 의식과 기억에 접속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소재로 한 SF 드라마 '닥터브레인'을 선택했다. 작품 수를 늘리는 것보다 작품 하나하나의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기는 애플TV+가 SF 드라마를 첫 작품으로 택한 데는 기존의 콘텐츠와 다른 신선함을 보여줄 수 있다고 자신감이 있었기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 진출 이후 인기 예능 '런닝맨' 스핀오프와 강다니엘 등 한류스타를 내세운 청춘드라마를 선보였지만 큰 반향을 얻지 못했던 디즈니+도 올해 2월 SF 드라마 '그리드'를 선보였다. '그리드'는 태양풍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방어막을 만든 유령에 관한 이야기다.
토종 OTT 티빙도 파라마운트+와의 공동 투자 첫 작품으로 SF를 선택했다. 지난 14일 총 6부작 가운데 3부작이 공개된 '욘더'다.
이준익 감독의 첫 드라마 도전작이기도 한 '욘더'는 기억으로 설계된 죽음 이후의 세계를 그린다. 이 감독은 11년 전 영화로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가 포기했지만, 그사이 발달한 시각효과 기술과 티빙과 파라마운트+의 투자를 받게 되면서 작품을 다시 만들게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황찬미 대중문화평론가는 "SF는 장르물의 미래로 앞으로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황 평론가는 "우리나라 콘텐츠를 보면 90년대에는 로맨틱 코미디, 멜로만 쭉 나오다가 메디컬 드라마, 법정물 드라마, 스릴러도 잘 찍는 단계에 올라섰다"며 "한동안은 사이코패스 범죄자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제는 이런 범죄물이 더는 색다르지 않다. 반면 SF는 블루오션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만 지금까지 선보인 SF 드라마들은 대중적으로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고요의 바다'는 시각 효과는 호평을 받았지만, 달의 중력 등 우주 환경에 대한 연출이 미숙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닥터브레인'과 '그리드'는 마니아층 외에는 이렇다 할 반응 자체가 나오지 않았고, 시각 효과 역시 기대 이하라는 반응이 나왔다. '욘더'는 이야기가 반환점을 돌았음에도 굵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으면서 흥미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SF는 시청자들에게 낯선 장르여서 우리만의 문법을 찾아야 하는데, 아직은 대중적인 포인트를 찾지 못한 것 같다"며 "과학적 지식을 잘 녹여 SF 장르에 충실하면서도 한국만의 정서를 녹여 대중들이 좋아하는 포인트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