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처음 발을 디딘 1997년부터 지금까지 나는 총 11채의 집을 지나쳐왔다. 첫 두 곳은 아버지가 어린 오빠와 나를 데리고 미국에 처음 정착하며 지냈던 아파트였고, 이후 어머니와 함께 다 같이 살았던 우리의 첫 단독주택이 있었다. 대학교 신입생 때 중국인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던 이층 침대 기숙사가 있었고, 마지막 학기 때 졸업을 위해 학교 근처에서 혼자 살았던 스튜디오형 아파트가 있었다. 그 무렵 가족은 새로 지어진 타운홈으로 이사를 했고, 나 또한 자연스럽게 2층의 맨 왼쪽 방을 배정받았다.
졸업 후 취업하고 한국 지사로 옮기게 되었을 땐 사촌 언니와 같은 동네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2년 후에는 제일 친한 친구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 교대역의 한 오피스텔로, 그다음 해에는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 삼성동의 한 오피스텔로 나의 짐들을 옮겼다.
2017년에 캘리포니아로 팀을 옮기게 되며 살게 된 쿠퍼티노 근처의 아파트에서 나름대로 가장 오랫동안 살았는데, 그래봤자 겨우 4년. 작년부터는 몇 년 전 부모님을 위해 조지아에 사놓은 귀여운 랜치 하우스에서 잠시 머물며 나의 다음 집을 물색 중이었다.
쉬지 않고 일하며 사는 동안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지만, 그때마다 어차피 집이라는 것은 영원할 수 없다며 자신을 달래 왔었다. 지구상에는 없을 나의 영원한 집을 기다리며 모든 인간은 죽기 전까지 결국 유랑하며 노매드(Nomad, 유목민)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순간의 위로는 될 수 있었지만, 사실 그 생각의 끝은 늘 허무했고 피곤한 나를 수십 년간 우울하게 만들었다.
미국에 온 지 25년이 지나서야 나는 그 생각이 옳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하우스(House)와 홈(Home)이 다르듯, 집은 공간이 아니라 마음이었음을 느낀다. 삼시 세끼를 차리는 부모의 마음이, 두 손 꼭 붙잡고 산책하는 연인의 마음이, 기쁘고 슬픈 일에 늘 함께하는 친구의 마음이, 그리고 이 귀한 사람들을 내 삶 구석구석에 꽃송이처럼 뿌려놓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미 나의 영원한 집이라는 것을.
2020년에 개봉해 많은 작품상을 휩쓸었던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에서도 묻고 있듯, 집은 미비한 단어가 아니라 우리가 늘 가지고 다녀야하는 존재일 것이다. 사는 집이 고장이 나거나 썩지 않도록 틈날 때마다 구석구석을 살펴주고 필요한 곳에 보수를 해야 하듯, 그렇게 늘 스스로 마음을 돌봐야 한다. 영원한 내 집, 나의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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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 프리랜서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