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손경락의 법률 칼럼 - 가정폭력과 접근금지명령

2022-04-27 (수)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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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린이날, 어머니날, 어버이날 등이 있는 5월은 다 같이 ’가정의 달’이라 하여 우리들 삶과 행복의 원천인 가정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기간이다.

그러나 NCADV(National Coalition Against Domestic Violence, 가정폭력 반대 전국연대)에 따르면 미국에서 매년 약 천만 명, 분당 20명꼴 이상의 사람들이 자신의 배우자 등 가족으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는다고 한다.

매일 2만 건 이상의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되고, 강력범죄의 15%가 가정폭력 사건일 정도로 가정폭력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다.


법적으로 가정폭력을 방지하는 방법 중 하나는 피해자가 법원에 가해자의 접근을 금지시켜달라고 신청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가해자가 피해자의 집이나, 직장, 학교와 같은 시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아울러 피해자에게 전화나 문자, 이메일, SNS와 같은 통신 접촉도 일체 하지 못하도록 법원이 ‘접근금지명령’을 내려준다.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은 접근 범위에 따라 제한적 금지(limited order of protection)와 비제한적 금지(full order of protection)로, 또 기간에 따라 단기와 장기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제한적 금지는 피해자가 가정폭력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와 가족관계를 지속하는 가운데 개선을 원할 때 발부하는 것으로, 피해자와의 접촉은 허용하되 더 이상의 범죄행위를 저지르지 않을 것을 요구한다.

비제한적 접근금지명령은 피해자에 대한 모든 형태의 접근을 금지한다. 또 단기는 비교적 짧은 기간만 금지하는 것이고, 장기 접근금지명령은 짧게는 2년, 길게는 십 년 넘게 지정할 수도 있다.

접근금지명령 발부 주체는 뉴욕의 경우 형사법원과 가정법원 두 군데 다 발부 가능하다. 그 차이점이라면 형사법원은 피해자가 일차적으로 경찰에 가정폭력을 신고토록 요건을 정해놓았지만, 가정법원은 변호사 도움 없이도 법원에 직접 신청하면 된다.

또 다른 점은 법원의 성격상 형사법원은 접근금지명령 기간에 아이들의 양육권과 면접권 같은 구체적 해결책까지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경우 형사법원은 접근금지명령에 따른 세부적인 문제들을 가정법원에 위임하기도 한다.

접근금지명령이 발부되는 경우, 대부분 주거지 문제가 중요한 법률적 쟁점이 된다.
예컨대 아내 A가 법원에 남편 B를 대상으로 신청했을 경우 B는 법원 명령이 떨어지는 시간부터 돌아갈 자기 거처를 잃게 된다.


법적으로 이 주거지는 부부 공동의 재산인데 법원 명령으로 졸지에 재산권 사용에 심각한 제약이 생긴 것이다. 법리상 정식 판결 전까지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고 보면 B로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다.

구제책의 일환으로 뉴욕주 항소법원은 최근 ‘크로퍼드 대 알리(Crawford v. Ally)’ 사건에서 “접근금지명령으로 피의자의 재산권에 심각한 제약이 생긴다면, 즉각적인 심리를 통해 이의 적법 여부를 판결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는 피의자의 재산권보다 피해자의 안전 문제에 더 비중을 두어 보수적으로 접근금지명령을 내리던 종전 법원의 관행에 변화를 시도한 것으로 감지된다. 다시 말해 피해자의 안전뿐 아니라 앞으로는 접근금지명령을 제한한다거나 피의자의 개인 물건들을 임시 거처로 옮겨갈 것을 허용하는 등의 방법으로 피의자의 재산권 보장 방안도 동시에 제시하라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가화만사성’이라고 하여 무엇보다 가정을 가장 중시했던 전통을 지켜왔다. 올 5월은 이 명구를 가슴에 새기고 국가와 사회 구성의 출발점인 가족과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금 깨치는 가정의 달이 되길 소망한다.

<손경락/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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