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의로운 사람

2022-04-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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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10일 한국전쟁 때 흥남에서 피난민 1만4,000명의 탈출을 도운 로버트 루니 변호사가 94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그는 뉴욕 브롱스에서 출생해 17세때 해군에 입대했고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전역 후 뉴욕주 화이트플레인스에서 변호사로 활동했다.

한국정부는 3월23일 로버트 루니 변호사의 유가족을 방문, 애도문과 추모패를 전달하며 위로했다.

메러디스 빅토리 호는 최대 59명까지만 승선할 수 있었으나 싣고 있던 모든 무기를 버리고 민간인들을 태워 북한군과 지뢰를 기적적으로 벗어나 수많은 목숨을 구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이라 불리는 이 난민구조작전에는 레너드 P. 라루 선장과 일등항해사 로버트 루니가 있어 가능했다.


라루 선장은 뉴저지주 뉴턴시 베네딕토회의 성바오로 수도원에 들어가 신부 마리너스로 봉헌하다가 2001년 87세의 생을 마감했다, 한국의 왜관 수도원 수사들이 바오로 수도원에서 파견돼 수도활동을 하고 있고 뜻있는 한인들은 이곳을 방문, 고마움을 기리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의 쉰들러’ 라 불리는 현봉학 박사의 힘도 컸다. 그는 1950년 12월 에드워드 알몬드 미10군단장에게 “제발 우리 불쌍한 국민을 살려주세요, ” 호소했고 라루 선장에게도 최대한 많은 수의 피난민들을 태워 구출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했다.

알몬드 장군의 고문으로 일하던 그는 전쟁후 미국 버지니아 의대, 필라델피아 토머스 제퍼슨 의과대, 펜실베니아 의과대 등에서 병리학 및 혈액학 교수로 재직했다.

본인은 이 현봉학 박사를 여러 번 뵌 적이 있다. 현봉학의 살아온 이야기를 한국일보에 연재할 때였는데, 신문사 방문후에 맨하탄 32가로 나가신다 하여 퀸즈보로 플라자 역으로 같이 가서 N전철을 탔었다.

아주의대 설립시 석좌교수로 한국에 나갔는데 학생들이 현교수를 할아버지처럼 따르고 챙긴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2006년 11월 85세 일기로 별세하자 두 시간 거리인 장례식장으로 고별인사를 하러 갔었다.

또, 난징 대학살에서 독일 제민스사 난징 지사장 존 라베가 있다.
1937년 12월13일 중화민국 수도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이 민간인을 대학살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외국인들이 모두 도시를 탈출했다. 라베는 탈출하지 않고 사재를 털어 외국대사관이 몰린 안전구에 들어온 중국인 20만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전쟁이 끝나고 난징 시민들은 생명의 은인인 라베를 찾아 나서 베를린에서 힘들게 사는 그를 도왔다.
히틀러 집권시절에는 나치 당원이 아니면 사업을 하는 게 불가능했다. 사업가 오스타르 쉰들러는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기 직전의 유대인 1,200명을 구했다. 라베 역시 나치당원임에도 일본군의 학살 앞에서 양심의 소리에 고개 돌리지 않았다.


지난 2월18일에는 1948년 소련군에 의해 봉쇄된 서베를린에 폭탄 대신 ‘사탕 폭탄’을 투하해 감동을 준 게일 할보르센이 10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 조종사들은 막 전쟁을 끝낸 독일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200만명의 시민이 굶어죽을 지경인 서베를린의 상황을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특히 어린이들이 큰 피해자였다.

당시 공수작전에 참석한 28살의 미 공군 조종사 할보르센은 초콜릿과 사탕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낙하산에 담아 공중에서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사탕폭탄의 시작이었다.

위에 예를 든 사람들은 의인(義人)이라 할 수 있다. 의인은 온전하고 정직하며 공평, 지혜, 친절, 성숙한 인간미를 지닌 사람을 이른다. 의로움의 반대는 죄다. 거짓, 사기, 기만, 위선과 만용이 판치는 세상에서 의로운 사람들이 다수 있으면 혼탁한 세상을 정화시킬 수 있다.

어떤 폭력도 양심의 소리는 억누르지 못한다. 어떤 거짓도 참을 이길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엉터리나 거짓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미담이 그립고 영웅 스토리가 간절하다.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 좀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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