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사치와 검소

2022-03-30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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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부인 이멜다 마르코스는 부패한 퍼스트레이디의 상징이었다. 1965년부터 1986년까지 영부인이었던 이멜다는 1954년 국회의사당 지하식당에서 젊은 정치인 마르코스를 만난지 11일만에 수도 마닐라의 한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멜다는 마닐라 미인대회의 우승자였고, 당시 하원의원이었기에 이들은 환상의 커플이었다. 그러나 온갖 부정부패로 부를 축적한 마르코스 부부는 결국 성난 민중에 의해 대통령궁에서 쫓겨났다. 이 부부의 당시 재산은 100억 달러를 육박했고 그중에서 일부만이 나라 국고로 환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90대인 이멜다 여사는 한때 직업정치인으로서 1975년 수도 마닐라의 시장이 되었고 후에 주택환경부 장관직까지 겸임했었다. 이멜다의 부패로 인해 필리핀은 몰락했고 동남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빈곤국이 되었다.


최근 필리핀 법원은 독재자 이멜다 일가가 집권 기간 획득한 고가의 미술품들을 정부에 환수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이 정도는 부정부패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마르코스 부부가 미국 망명길에 오른 뒤 살던 궁궐에서 미처 가져가지 못한 수천 켤레의 구두가 발견되면서 그녀는 ‘구두여왕 이멜다’ 라는 악명까지 붙었다.

망명 5년 뒤 그녀는 필리핀으로 돌아와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3,000켤레의 구두와 보석을 좋아했던 이멜다는 결국 2018년에 부패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불명예의 상징이 된 이멜다는 한국에도 도플갱어가 있을까?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 수감된 지 5년만에 돌아왔다. 그녀의 옷은 2017년 구속 당시 입었던 푸른색 코트와 같은 옷이라고 한다. 석방된 후 병원에서 치료후 퇴원한 박 전 대통령은 남색 코트 차림으로 ‘국민에게 드리는 인사’를 했다. 감청색 코트는 대통령 재직 시절 자주 입던 옷으로, 2017년 국립현충원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내외의 묘소를 참배할 때도 입었던 옷으로 전해진다.

이 옷은 탄핵 당시 조사 받으러 갈 때도, 이번 대선 사전투표를 하러 갈 때도 입었다고 한다. 박근혜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5년간은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구 달성군 사저에 입주 전, 지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했다.

현 영부인이 청와대를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지금, 아이러니하게도 화려한 컴백의 한 장면이다. 박근혜가 청와대에 살았던 기간은 약16년 반. 이는 박정희 대통령과 청와대에 입주해서, 그리고 본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해서 더 산 기간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대로 청와대는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사치와 권력의 상징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금 매우 바쁘다. 전임 대통령이 된 문재인은 짐을 빼야 하는데 법적 소송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재임기간 청와대 특수 활동비와 영부인 김정숙 여사의 의전비용 사용명세를 공개하라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납세자연맹이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소송에서 특별활동비 지출결의서와 김정숙 여사 의전 비용 관련 일자별 지출 내용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측은 그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일축, 공개가 당장은 어려울 전망이다.

1년에 100벌 넘는 의전 의상으로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는 비판을 받았던 박근혜. 유죄판결까지 받은 것이 당시 대통령의 의전 지출내용이 공개된 지 불과 5년 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침대를 국가 예산으로 구입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그렇다면 청와대를 나오는 사람은 누구나 같은 잣대로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박근혜처럼 어느 대통령 일가도 의전과 품위 유지를 위해 쓴 세금을 확실하게 조사해야 마땅하다.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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