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인디오(Indio)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갔었다. LA에서 동쪽으로 2시간 반 떨어진 사막도시, 작년에 그곳으로 이사 간 친구가 한번 오라고 계속 손짓했지만 엄두를 못 내던 차에 나보다 젊은 친구가 운전을 자처하기에 따라나섰다.
우리를 초대한 줄리 심과 나를 데려간 고경호는 거의 30년 전에 만난 친구들이다. 그때 두 사람은 한미 주류화단에서 크게 활약하며 촉망받던 1.5세 화가들이었다.
줄리는 큐레이터로도 빛나는 재능을 발휘하여 굵직굵직한 전시들을 여럿 만들었다. 그중에서도 1995년 4.29폭동 3주년 때 기획한 ‘콜래보레이션즈’는 역사에 남을 기획전이었다. 당시 한창 적대적이던 한인사회와 흑인사회에서 작가 12명씩을 모아 각각 짝을 이루게 하고, 둘이 함께 만든 합작품들을 한인화랑과 흑인갤러리에서 동시에 선보였다. 처음에 경계와 불신이 가득했던 작가들은 6개월 공동작업을 통해 허물없는 친구들이 되었고, 인종갈등을 창조적 에너지로 전환시킨 이 프로젝트는 지금껏 견줄만한 행사가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성공적이었다.
이 전시의 참가작가 중 하나였던 경호는 그때 막 UCLA 미술대학과 대학원을 우등졸업하고 혜성처럼 등장한 ‘무서운 신인’이었다. 강렬한 이미지로 문제의식을 대담하게 던지는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눈이 번쩍 뜨이던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젊은 화가에게서 이렇게 특별한 이미지가 나올 수 있다니, 개인의 시각을 통해 사회의 문제를 인정사정없이 드러낸 그의 시원한 그림은 한인화단은 물론 주류화단에서도 주목했고, 다우니 뮤지엄과 뉴포트 뮤지엄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이 잇달아 열리는 등 기대가 쏟아졌었다.
그런데 그 얼마 후 두 사람은 돌연 작업을 중단하고 화단을 떠나 각자 삶의 소용돌이에 몸을 맡겼다. 남매를 둔 줄리는 멀리 외곽도시로 이사해 ‘사커맘’이 되었고, 경호는 딸 셋을 낳고 LACC교수로 뛰면서 여분의 에너지가 일체 허락되지 않는 삶을 살았다. 화단으로서는 너무 안타까운 손실이었다.
놀랍고 신기한 것은 서로 연결점 없이 지내던 그녀들이 어느 시점부터 각자 다른 방법과 형태로 중남미여성들을 위한 선교사역에 헌신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줄리는 2006년 니카라과의 한 어촌을 방문했다가 희망없이 무료하게 살아가는 여자들과 신발도 없이 노는 아이들을 보고 이들을 돕기로 결심한다. 마을 한가운데 땅을 사서 벽돌 한 장씩 쌓아가며 건물을 지었고, 동네여인들을 모아 바느질을 가르치며 인형, 액세서리, 가방을 만들게 했다. 옷감은 미국에서 도네이션 받았고, 완제품을 다시 미국으로 가져와 팔아다가 여자들에게 돈을 쥐어줬다. 생전처음 자기 손으로 돈을 벌게 된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일했을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다. 그 시절 오랜만에 줄리를 만나면 늘 보따리장수처럼 큰 백에 인형과 천 가방들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흐르면서 엘트란시토 아트센터(ETCA, eltransitoart.com)에는 도서관과 강의실도 생겼고, 봉사자 숙소와 카페까지 들어섰다. 도서관에는 매일 아이들이 와서 살다시피 하고, 여기서 자란 아이들이 자원봉사자로 돌아올 만큼 지역사회의 중요한 문화센터로 자리매김했다. 앞으로 이곳 카페에서 여성들이 커피와 샌드위치, 공예품을 팔며 자립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줄리의 꿈, 지금은 순조로운 이양작업을 고민하고 있다.
한편 경호는 2009년 멕시코 단기선교를 따라나섰다가 거기서 본 처참한 현지여성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고질적인 가난은 둘째 치고, 가정의 형태가 없는 사회였다. 여성들은 어린 시절부터 성문란과 폭력, 근친상간에 노출되고, 남자들에게 버림받은 딸과 어머니, 할머니가 이끌어가는 모계사회였다. 경호는 집에 와서도 그들 생각이 나서 밤낮없이 한달을 계속 울었단다. 결국 목사님과 상담하면서 ‘소명’을 깨달았고 “새로운 여성사역을 창안해보라”는 격려에 ‘예술가의 터치가 살아있는 여성세미나’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선교팀을 구성했다.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여성들을 가르치고, 섬기고, 하나님의 딸이라는 정체성을 새로 심어주는 3일간의 헌신된 프로그램은 수많은 기적과 치유를 낳았다. 현장에서마다 너무 많은 기적이 일어나자 혹시 이게 이단이 아닌지 걱정돼서 풀러신학교에서 선교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경호는 2019년 박사과정을 마쳤다.
여성세미나는 10여년동안 48회나 열렸다.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브라질, 칠레 등 중남미를 넘어 필리핀, 인도네시아, 러시아, 몽골로까지 확대됐다. 지금은 완전히 헌신된 평신도 전문가팀이 결성되었고, 갈 때마다 일주일씩 개인휴가와 적지 않은 비용을 써야하는 이 선교사역에 다 같이 올인하고 있다.
오랜 만에 회포도 풀고 한가롭게 조슈아트리 국립공원에서 피크닉할 생각으로 떠난 주말여행은 두 어메이징한 친구들의 경이로운 간증으로 사흘이 뜨겁게 흘러갔다. 이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방해와 협박과 어려움이 있었는지, 한 달을 이야기해도 모자랄 듯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좋은 소식은 줄리와 경호가 이제 다시 작업 테이블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아직은 몸을 푸는 수준이라지만 나는 알고 있다. 이들이 일을 시작하면 못 말리게 무서워진다는 사실을…. 오랜 담금질을 거쳐 나오는 예술의 정수를 우리는 곧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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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