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발언대 -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 판결을 접하며

2022-02-18 (금) 임일청/미주크리스천 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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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월 28일 여운택, 신천수, 이춘식, 김규식씨 등 4명이 서울중앙지법에 신일철주금(일제 당시 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고(故) 여운택씨 등 4명이 일본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은 여운택씨 등 4인에게 1억원씩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21년 6월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영호)는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16개 일본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낼 권한이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또, 2022년 2월 8일, A씨 등 5명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서울 중앙지법 민사 68 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기각판결했다.

2018년 10월, 당시 대법원은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은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판결했고, 강제징용피해자들은 이에 따라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낸 것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하급심은 계속 2012년 5월24일 있었던 대법원 파기환송을 기준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하여 판결을 각하하거나 기각하고 있다. 이러한 혼란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의 소멸시효 기산점을 대법원에서 반드시 확정시켜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판사에 따라 사건을 대하는 시각이 다를 수 있으므로 판결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2021년 6월 7일, 재판부가 판결문에서 언급했던 이해하기 힘든 표현들 때문이다. 나는 법률가도 아니고 법조인도 아니지만 보편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봐도 피해자들의 청구를 받아들였다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결과가 뒤집힌다 해도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이 추락할 일이 없다.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본안 판결이 확정되고 강제집행까지 마쳐 피고들의 손해가 현실화하면 다양한 경로로 일본의 중재절차 또는 국제사법재판소 회부 공세와 압박이 이어진다 해도 소신 있는 공정한 재판을 했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무엇 때문에 대한민국 사법부의 판결, 대법원 판결이 국제중재 또는 국제재판 대상이 되는 자체만으로 사법 신뢰에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약 패소하게 되면 대한민국 사법부의 신뢰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히게 되고, 세계 10강에 들어선 대한민국의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한다고 했는데 재판에서 패소하는 나라는 모두 문명국으로서의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하여 야만국이 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사법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공정한 재판을 통해 올바른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데 재판부는 을사오적과 그 추종자들로 인하여 나라를 잃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강제로 끌려가 모진 고생을 하다 간신히 돌아온 일제 강제징용피해자들의 입장을 한 번이라도 생각하고 그와 같은 판결을 내린 것인지 참으로 궁금하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소송을 낸 진정한 이유는 보상금 자체보다도 총칼을 앞세워 한국의 수많은 젊은이를 전쟁터로 몰아넣어 사망케 하였고, 강제징용으로 인하여 추위와 굶주림 가운데 열악한 조건의 탄광과 제철소에서 일하다 부상을 당하거나 죽게 했을 뿐 아니라, 꽃다운 나이의 소녀들을 감언이설로 속여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일본군의 성적 노예로 삼았던 천인공노할 추악하고 악랄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을 대한민국 재판부를 통해 세상에 밝히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하급심 재판부는 대법원이 이미 내린 정답을 마다하고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여지조차 가로막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제기되는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에 대해 재판부의 슬기롭고 현명한 대처를 바라마지 않는다.

<임일청/미주크리스천 문인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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