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영웅도, 감동도 없다

2022-02-1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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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정부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으면서 영국을 비롯 일부유럽 국가도 인권문제를 이유로 공식사절단을 보내지 않았다. 초반부터 모양새를 구긴 베이징올림픽은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경기에 편파판정으로 한국 선수들의 실격이 잇따랐다. 어부지리로 중국 선수들이 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세계가 오미크론 강세로 연일 확진자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우리는 괜찮다. 아무 염려 없다.”며 올림픽 강행을 밀어붙이더니 개막식부터 지금까지 규모나 내용면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다.

‘ 무조건 일등, 패배는 용납하지 않는다.’ 는 중국의 방침이 결과와 실적에만 치우치면서 비인간적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지난 7일 피겨팀 이벤트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미국 국적을 버리고 중국 피겨 국가대표로 출전한 주이(19) 선수가 실수를 하자 온갖 욕이 쏟아졌다.


주이는 첫 콤비네이션 점프를 실수했고 착지과정에서 벽에 부딪치며 그대로 넘어졌다. 마지막 점프에서도 회전 타이밍을 놓쳐 1회전만 했다.
미국 태생 주이가 중국인 선수의 자리를 빼앗았다며 “중국어부터 배워.”, “ 정말 수치스러워 “ 하는 네티즌들의 인신공격이 이어졌다. 경기후 주이는 눈물을 흘렸다.

주이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중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며 2018년 중국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중국에 귀화했다. 이름도 비벌리 주에서 주이로 바뀌었다.

겨우 19세인 소녀가 처음으로 나간 올림픽에서 당황하고 실수를 했다고 해서, 또 제 딴에는 태어나고 자란 나라를 버리고 부모의 모국을 택했는데 왜 이런 비정한 말을 들어야 하는가.

만일, 그 소녀가 한국계 미국인 2세인데 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으로 국제경기에 나갔다 하자. 경기장에서 제 실력을 발휘 못하자 “ 애국심보다 한국어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 ”는 등 힐난이 쏟아진다면 이민1세와 2세는 얼마나 상처를 받겠는가.

“ 괜찮다 ”, “ 애썼어, ”, “ 아직 어리니 다음에 잘하면 된다.”, “그래도 기특해” . “부모의 뿌리를 찾아 국적까지 바꾸고 대표로 출전해 주었으니 고맙다. ” 등등 얼마나 좋은 말이 많은가.

이와 반대로 같은 19세인 구 아이링(미국명 에일린 구)은 8일 열린 스키 프리스타일 여자 빅에어에서 금메달을 따자 온 중국이 열광하고 있다.

에일린 구는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지난 2019년부터 중국 국적으로 국제 대회에 출전해 오고 있다. 이번 시즌 국제스키연맹 프리스타일 월드컵 여자 하프파이트 대회에서 네 차례 모두 우승한 선수다.


태어나고 자란 미국 대신 “ 엄마가 태어난 곳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다. ” 며 중국을 택한 구 아이링에 대해서 중국관영 중앙TV에서 경기 장면을 반복 방영 중이고 수많은 기사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올림픽 외교 보이콧으로 인해 분위기가 차가운 와중에 미국 대신 중국을 택했다면서 구 아이링에 대한 칭찬이 하늘을 찌른다.

그런데, 우리 모두 ‘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 는 말을 알고 있다. 국가대표 라는 타이틀만 해도 대단하다. 비록 성적은 좋지 않지만 최선을 다했다면 격려해 주는 것이 올림픽 정신일 것이다.

2020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아직 영웅 탄생이나 감동 스토리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 기존의 올림픽에서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사연, 꼴찌를 했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 패배 인정하고 승자를 치켜세우는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영웅도 없고 감동도 없고 심지어 눈도 없다. 대회장에 내리는 눈은 100% 인공눈이다.

하루 1억 명의 인구가 마실 수 있는 양이 버려지고 있다. 수킬로 미터 떨어진 저수지의 물을 이끌어와 제설기를 동원해 만들어 뿌린다.
이 엄청난 물량 공세에 편파 판정 잡음에 개최국 텃세 부리기 등등 말 많은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역사에 어떻게 남을까.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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