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살며, 느끼며 - 안전거리

2022-01-21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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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스 스퀘어 지하철역에서 노숙자에 의해 선로로 떠밀려 사망한 중국계 여성 미셸 알 리사 고(40), 그녀에 대한 추모열기가 뜨겁다. 컨설팅 전문 커리어 우먼으로서 10년이상 여성과 어린이를 위한 자원봉사를 해온 그녀의 허망한 죽음에 한인들은 새삼 인종혐오 범죄가 난무하는 미국에 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있다.

맨하탄, 퀸즈, 브루클린, 브롱스 4개 보로를 촘촘이 누비는 30여개 전철 노선과 500여개 역 중에서도 타임스 스퀘어 역은 브로드웨이 극장가 중심지이자 ‘세계의 교차로’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퀸즈로 들어오려면 N, Q, R, W 노선을 타야 한다.

지하 역 중심지에는 늘 거리 악사들의 연주가 들려온다. 그 위에 걸린 대형 벽화는 뉴욕 출신 팝 아티스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TIMES SQUARE’(53피트 길이)이다. 대중교통 기관을 추상화 한 그림에 노랑과 블루의 밝고 경쾌한 색상이 지극히 뉴욕스럽다.


이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타임스 스퀘어 R노선에서 벌어진 사건은 참으로 비극적이다.
더 이상 정신적 문제를 지닌 노숙자를 방치할 수 없다며 경찰이 병원이나 수용시설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 정신병 환자가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치료를 더욱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여러 지하철 안전책을 논의 하지만 늘 지지부진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한국의 경우 승강장과 선로 사이를 완전차단하는 밀폐형 스크린 도어(Platform Screen Door)를 설치 한 지 오래 되었다. 2002년 2월 경인선 인천역에 처음 등장한 이래 2005년 도시 철도노선에는 스크린 도어가 의무화 되었다. 이후 지하철 떠밀기 사건이나 선로 추락사고는 거의 없다,

평상시에는 닫혀 있다가 열차가 오면 열차문과 함께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스크린 도어, 한국방문시 애용하면서 참으로 신기했었다. 그런데 세계적 도시 뉴욕시에 스크린 도어 설치 진행이 1980년대부터 왜 말만 나오고 말까. 뉴욕 지하철 전면 리모델링 사업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노숙자들의 ‘묻지마 살인’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길을 가다가, 일터에서, 노숙자에게 자신의 코트를 덮어주려다 도리어 폭행과 강도를 당하는 등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이 사건들을 단순사고야, 묻지마 살인이네 등으로 넘기고 말 것인가.

뉴욕 수사당국은 이번 사건을 증오범죄로 규정하진 않지만 우리는 이미 팬데믹 기간동안 수많은 아시안 혐오와 차별을 경험했고 걱정하고 있다. 아시안 혐오범죄는 미국내 반 아시안 정서나 행위가 코로나19 사태동안 사회 전반에 퍼져가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때맞춰 뉴저지의 모든 초중고교생 대상으로 2022~2023 학년도부터 아시안 아메리칸 역사 교육이 시작된다고 한다. 18일 필 머피 주지사는 아시안 아메리칸 역사 교육의무화 법안에 서명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촉발된 아시안 증오범죄 급증이 배경이다.

시민참여센터 이민자보호 법률대책위원회가 펴낸 아시안 혐오범죄 대응 매뉴얼 핸드백을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차분히 응답한다, 무시하고 자리를 피한다, 관련 당국에 신고한다, 피해자를 보면 큰소리로 가해자 행동을 지적하며 다른사람의 응원을 유도한다 등이다.


아시안혐오범죄 실태조사, 아시안혐오범죄 시민단체 적극 대응, 소수인종간 연대 강화, 아시안혐오범죄 교육 등 여러 대책들이 지금 내 앞에 일이 닥쳤을 때는 너무 멀리 있다. 재택근무도 안되고 필히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한다면 내가 먼저 조심해야 한다.

열차 진입 전 절대 선로 가까이 가면 안되고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일단 피하고 옆과 등 뒤도 살펴야 한다. 불의의 습격을 대비하여 기둥이나 계단 등 방패막 가까이 있는 것이 좋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나싶어 좀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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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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