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사이드 - 한국과 미국의 새해는?

2022-01-05 (수)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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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서 사람들은 모두 코로나나 경제 등 우리를 덮친 힘든 일이 다 사라지고 평안해 지기를 바라며 새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그러나 팬데믹의 장기화로 빈곤층의 생활고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보도다. 무보험자, 노숙자비율이 높고 기초 생활비 지출이 많아 살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올해는 좀 더 나아질까. 계속 희망을 가져보지만 한국이나 미국의 현실을 보면 왠지 바이마르가 생각난다. 100년 전 독일의 바이마르는 바이마르공화국 혹은 바이마르헌법에 등장하는 소도시이다. 바이마르헌법은 근대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통하며 오늘날 많은 나라에 영향을 끼쳤다.

1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은 각종 산업에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당시는 독일 마르크, 영국 실링 같은 유럽의 화폐들이 거의 동일한 가치를 지녔고 미국 달러로 대등하게 교환 가능했다. 그러다 1923년, 달러와 마르크의 환율은 1조 마르크당 1달러였고 돈을 가득 실은 수레로도 종이 한 장 살 수 없었다.


전쟁에 패한 독일인들은 거의 맨붕 상태였다.물가는 1차 세계대전 시기 5년 사이 두 배로 뛰었다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여전히 곧 나아지겠지 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물가는 다시 배로 뛰어 사람들은 모두 불만이었고 노동자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했다. 그때 유능한 외무장관 발터 라테나우가 암살을 당한다.

이는 회복을 기대하던 독일인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희망을 잃은 국민들은 독일 화폐보다 다이아몬드,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을 사기 시작했다. 물가가 오르자 필요한 통화량은 점차 폭증했고 독일 중앙은행은 돈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국은 상황을 길게 보지 않았다. 유명 언론들은 유통되는 돈이 지나치게 많지는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기업들은 환율 폭락으로 오히려 독일 상품이 더욱 저렴하고 수출하기 쉽게 될 것이라며 열심히 일하라고 국민을 선동했다.

그러나 돈 찍어내기와 인플레이션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독일의 물가 인상은 본격 시작했다. 공화국의 중앙은행(Reichsbank)의 인쇄기가 밤새 돌아갔지만 악순환의 고리는 끊을 수 없었다. 국가가 도적질로 무너지면서 마치 요즘 미국의 BLM 약탈 행위처럼 돼버렸다.

사람들은 좀비나 원시인처럼 살았고, 어느새 1,000억 마르크 지폐가 나오더니 1923년 11월에 1달러는 1조 마르크에 거래되면서 경제 붕괴가 마침표를 찍었다. 초인플레이션의 결말은 이른바 ‘Rentenmark의 기적’으로 이어졌다. Schacht라는 유대인이 중앙은행격인 Reichsbank의 대표로 부임하면서 통화개혁을 이끌었다. 지폐에서 0을 지워버린 것이다.

독일은 그래도 광산과 농장, 공장이 많이 있는 부유한 나라였다. 새 화폐로만 부동산에 대한 모기지나 공장에 대한 채권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공장과 토지를 현금으로 빼돌려 해외에서 사용할 수 없게 했다. 국가가 다시 움직였음에도, 삶은 예전처럼 다시 복구되지 않았다.

경제 위기와 더불어 시민들의 소박한 꿈과 계획이 사라졌다. 중국관련 소설 ‘대지’로 유명한 작가 펄 벅은 1923년 독일에 머물면서 이렇게 기술했다. "독일인들은 재산을 잃었고 멍하니 인플레이션에 충격을 받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누가 그들을 패배시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자기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었지만 어느새 도덕과 윤리, 품위라는 가치는 자취를 감춰 버렸다."

역사상 최고의 인플레이션을 기록한 바이마르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의 결말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즘의 광기와 히틀러의 등장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바이마르공화국의 최대도시 베를린은 직업여성들이 즐비했고, 신여성들과 동성연애자들이 자유를 구가했다. 바 이마르헌법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으로 평가받았지만 결말은 또 다른 비극이었다. 2022년 새해 한국과 미국의 상황은 어떻게 전개될까.

<여주영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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