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상만사-최후의 만찬

2021-12-28 (화)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크게 작게
성경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을 흔히 성화라 부른다. 성화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그림이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리기 하루 전에 제자들과 식사를 나누면서 잔을 들어 축사하시고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피다.”고 말씀하시고 떡을 들어 “이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찢어지는 나의 몸이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즉 인류의 속죄를 위하여 희생하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대신한 것이다.

이것이 전통이 되어 기독교는 성만찬이라 칭하여 매해 서너 번씩 빵과 포도주로 예수의 희생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성만찬을 드리고 있고 가톨릭교회는 미사라 하여 매 예배 때마다 미사를 드린다. 이 일을 최고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예 예배를 미사라고 부른다.

명화 ‘최후의 만찬’은 화가 레오날도 다빈치의 작품이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나누는 장면인데 전설에 의하면 배반자 유다의 얼굴은 화가가 원수처럼 싫어하던 인간의 얼굴을 연상하며 그렸다고 한다. 그 후에 가장 고심한 것이 예수의 얼굴을 누구를 모델로 하느냐 였다. 누구의 얼굴을 생각해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 고심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미워하는 친구를 모델로 하여 유다의 얼굴을 그린 것에 가책을 느껴 그는 즉시 그 친구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였다.


그리고 나니 바로 그 친구가 예수의 모델로 적합한 것을 깨닫고 그 사람을 모델로 예수를 표현하고 유다는 다른 사람을 모델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마음의 상태에 따라 그림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사랑도 하고 미워도 하게 된다. 마음의 방향에 따라 긍정적인 생각이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기울어지기도 한다. 악과 선의 선택이 나의 마음에 따른다. 천국과 지옥의 갈래길이 내 마음에 있는 것이다. 그러니 체력의 단련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닦는 일이 무척 중요해진다. 그래서 수양이 필요하고 도덕이 필요하고 종교가 필요해진다. 나도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기 때문에 신과 같은 큰 힘이 필요한 것이다.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가 자기를 배신할 제자가 있음을 예언한다. 제자들이 모두 놀라고 있을 때 가롯 유다는 자리를 떠나 로마 군대에 가서 자기가 지적하는 인간이 예수임으로 체포하라고 말한다. 그는 그 보상금으로 은화 30냥을 챙겼으나 지금까지 2,000년을 두고 기독교인들은 그의 죄상을 사도행전이라는 신앙 공동선언문에 넣어 성만찬 예식 때마다 외우고 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처형된 후 제자들은 모두 흩어졌다. 어부 출신들은 모두 고기잡이 생활로 돌아갔다. 제자 중에서도 수제자로 불리던 베드로의 후일담이 남아있다. 그도 무서워 도망하고 있었다. 그 앞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한다. 베드로가 놀라서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가 대답하였다. “너까지 무서워 도망하고 있으니 나는 또 한번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다.” 그때서야 베드로가 깊이 회개하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자진 체포되어 자기는 예수처럼 제대로 죽을 수 없으니 거꾸러 매달아 달라고 부탁하여 정말 로마군은 베드로를 거꾸로 십자가에 달아 죽였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현대화하여 소설로 꾸민 것이 세계명작 ‘쿠오바디스’인데 이 라틴어는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성만찬 예식문을 낭독하는 식으로 진행하는데 형식적이 되기 쉽다. 좀 더 심각하게 진행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의미를 확실하게 부각 시키는 노력과 형식이 더 연구되어야 한다. 성만찬에 참가하는 자들의 회개가 먼저 선행되어야 의미가 살아난다.

<최효섭/ 아동문학가·목사>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