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좌충우돌 미국 정착기

2021-12-25 (토) 장아라 / 첼리스트
크게 작게
20여년 전 이야기이다. 결혼을 하고 바로 미국으로 와 신혼이 시작되었다. 영어는 서툴고 운전을 해도 동서남북을 모르겠고 스톱 사인이 눈에 안 들어와 내가 운전을 하면 남편이 기함을 하며 지냈다.

운전을 몇 년을 하고 미국에 왔는데 첫 운전면허 실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무조건 천천히 하라는 시아버님 말만 믿고 천천히 안전하게 한다고 했는데 떨어진 이유에는 ‘Dangerously Slow’라고 쓰여 있었다.

나름 문법에 강했던 내 영어실력은 참말로 쓸모가 없었으며 식당에서 나를 당황하게 만든 ‘for here or to go’는 영어책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표현이었다. 영어 좀 한다하는 친구가 책임지고 맥도날드에서 주문을 했다가 저 말을 듣고 “얘들아 네명은 남고 둘은 나가래”라고 했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떠오른다.


당시 나는 용기를 내어 유명한 베이글집에서 주문을 했는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양파맛 베이글에 딸기 크림치즈를 발라달라고 주문한 기억이 난다. 양파와 딸기의 조합은 정말 좋지 않았다. 내 머릿속은 과거형으로 말할까 현재완료형으로 말할까 늘 고민을 했고, 이때는 정관사 the인지 부정관사 a인지 헷갈려서 느닷없이 과묵한 20대가 시작되었다.
나는 당시 시애틀의 북쪽 도시 켄모어에 살고 있었다. 하루는 집에 가는데 왠지 집은 멀어져가는 기분이 들고 평소 보던 환경이 아닌 느낌이 들었다. 이상해서 차를 세우고 회사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거니 그 길로 계속 가면 곧 캐나다가 나올 수도 있다고 알려줬다.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10월이었는데 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내리고 해는 짧고 해서 멍하니 집안에 있으며 나름 화분을 가꾼다고 꾸준히 물을 줬는데 몇 달 후 남편이 그것이 조화라고 알려줬다. 나는 집에 조화가 있어본 적이 없어서 조화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심지어 내 눈엔 물을 주니 나무가 점점 푸르러지는 것 같았다.

나의 미국 첫 정착은 이렇듯 좌충우돌이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서울 생활을 접고 온 늘 푸른 워싱턴 주의 삶은 요양생활 같기도 하고 유배를 온 것 같기도 했다. 바다 같은 호수와 침엽수가 즐비한 자연은 내 몸과 마음에 산소가 충만해지는 여유를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는 이곳 북가주에서 호젓한 오후를 지나며, 수개월을 쉬지 않고 비가 내리던 시애틀에서의 철없던 신혼 때가 떠올라 미소를 지어본다.

<장아라 / 첼리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