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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빠의 크리스마스 선물

2021-12-11 (토)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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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동네 커뮤니티 페이스북에 눈길을 끄는 포스팅이 올라왔다. 보통은 안 쓰는 물건을 사고팔거나 무료로 나눔 하는 글이 대부분인데 이번엔 달랐다. 죽은 자신의 아이를 기리며 도움이 필요한 동네 아이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으니 아이를 추천해달라는 글이었다.

글이 오르자마자 여러 댓글들이 달렸다. 작성자를 칭찬하는 글들, 도움이 필요한 아이를 알고 있다며 메시지를 보내겠다는 댓글들, 그리고 작성자의 죽은 아이를 기리는 답변들이 쏟아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게시물이었다. 한편으로 내 딸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 고민만 해오던 나 자신이 살짝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이 아버지는 자신의 가슴에 묻은 아이와 함께 매년 이런 좋은 일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떠났지만 아이와 같은 또래의 아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며 이 아버지는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또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선물하는 것이다.


내가 만약 그 아버지라면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내게도 아이가 하나 있지만 이 아이를 잃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라면 아이를 잃고 그 사실을 상기시킬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아빠의 선행에 적잖이 감동을 했다.

자식을 잃는 고통을 창자가 끊어지는 것에 비유한다. 이 말에는 슬픈 유래가 있다. 진나라의 군주 환온이 촉을 정벌하러 길이었다. 양자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길에 병사 하나가 새끼 원숭이 한 마리를 발견하여 재미 삼아 배에 싣고 함께 출발해버린다. 어미 원숭이가 뒤늦게 배를 쫓아가 보지만 배는 이미 출발해버린 지 오래라 발만 동동 굴렀다. 백리쯤 지나왔을까. 배가 강기슭에 다다르자 배를 쫓아오던 어미 원숭이가 배로 뛰어들었다. 어렵게 쫓아온 어미 원숭이였지만 배에 뛰어들자마자 이내 죽고 만다.

이를 보고 어미 원숭이의 죽음의 원인이 궁금했던 병사들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보았다. 배를 가르자 어미 원숭이의 창자가 다 끊어져 있음을 보고 모두 놀랐다. 이 이야기를 들은 환온은 아무리 짐승이라지만 부모 자식 간의 정은 똑같거늘 어찌 생이별을 시켜 창자가 다 끊어지는 고통을 주었느냐며 그 병사를 크게 꾸짖고 배에서 쫓아냈다고 한다.
우리말에 자식을 잃거나, 부인과 남편을 잃거나 부모를 잃은 이를 칭하는 호칭은 다 있어도 자식을 잃은 부모를 칭하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아픔을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여 그렇다고 한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겪고 매년 그 자식을 떠올리며 선행을 베푸는 그 아버지를 보며 연말연시의 의미를 다시 되돌아본다. 단순히 한 해를 마무리하며 먹고 마시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올 한 해 신경 쓰지 못했던 소외된 이웃들을 돌아보고 내 옆에 가족들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올해 내 상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고 내 상실이 이에 그치지 않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오늘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그 아버지의 선행을 따라 다른 이웃들도 비슷한 선행 릴레이를 이어가고 있었다. 코로나와 물가 상승으로 모두에게 차가운 한 해였지만 우리 이웃들의 마음의 온도까지 식히지는 못했나 보다. 나도 동참할 부분이 있을까 싶어 손가락이 바빠진다. 따뜻한 연말이다.

<이보람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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