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척야산 메아리친 조국애(愛)… 살포시 내려앉은 가을애(愛)

2021-10-08 (금) 홍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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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홍천 내촌면 척야산문화수목원과 가령폭포

빠른 길만 고집하면 자연히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양평에서 양양까지, 강원 홍천군은 동서로 직선거리 90㎞가 넘는 넓은 땅이다. 속초든 양양이든 수도권에서 강원 동해안 북부지역으로 가려면 꼭 거쳐야 하는 곳이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개통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그나마 길손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홍천 변두리의 지명은 지도에서 지워진 듯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내촌면 두촌면 화촌면 등 이름만 들어도 전형적인 산촌마을, 그 가운데쯤에 내촌면이 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지만 그래도 강원도라 평범한 마을 풍광도 기본은 하는 곳이다. 가을의 길목, 한가로운 시골길로 차를 몰다 보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뜻밖의 보물을 만날 수 있다. 감동은 기대에 반비례한다.

■비장하게 시작해 가을 서정으로, 척야산문화수목원


서울양양고속도로 내촌IC로 내려서면 바로 동창마을이다. 행정지명은 물걸리이지만 조선 중종 때 대동미 창고가 있었고, 홍천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 지금도 동창마을로 더 많이 불린다. 100호 남짓한 집들이 드문드문 흩어져 있고, 마을 앞 하천 변에 넓지 않은 논이 형성된 전형적인 산촌마을이다.

그래도 한때는 홍천 동부 산간지역의 중심이었다. 마을 중간에 절터가 하나 있다.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물걸리사지’로 불리는데, 남아 있는 유물로 보아 규모가 상당한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민가와 밭으로 둘러싸인 절터에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다. 통일신라 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탑으로 기단과 탑신이 조화롭고 안정감 있어 보물로 지정돼 있다. 깊은 산중에 버려진 폐사지가 아니라 주민들이 오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으니 탑 하나만 남아도 쓸쓸하지 않다. 정확한 쓰임새를 알 수 없는 석재들은 한쪽에 따로 모아 놓았다.

절터 앞에는 기미만세공원이 조성돼 있다. 1919년 4월 3일 인근 다섯 개 주민 3,000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외친 ‘동창만세운동’을 기리는 공원이다. 이날 일본 경찰은 시위 군중을 향해 총을 쐈고, 이 과정에서 8명이 숨지고 20여 명이 부상했다. 마을에 있는 팔렬중고등학교의 '팔렬'은 이때 숨진 여덟 열사를 기리는 의미다.

마을 외곽으로 이동하면 ‘척야산문화수목원’이 있다. 산 이름도 낯설고 문화와 수목원을 조합했으니 어떤 곳인지 선뜻 그려지지 않는데, 조금만 둘러보면 동창만세운동과 관련된 시설이라는 걸 금방 눈치챌 수 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돌계단을 오르면 여러 개의 석조물이 보인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개토대왕비 모형이다. 실물보다 조금 크게 만들어 비에 적힌 글자도 한결 또렷하다.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실제 비석이 유리 보호각에 갇혀 다소 갑갑해 보이는 데 반해, 고구려의 기상이 자유로이 펼쳐지는 듯한 해방감을 선사한다. 바로 옆에 대형 발해 석등도 재현해 놓았고, 주변에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해 안중근·윤봉길 의사와 백범 김구에 이르기까지 나라 지키기에 열성을 다한 인물의 어록을 새긴 비석을 배치했다.

모든 조형물은 동창만세운동을 주도한 김덕원(1876~1943?) 의사의 뜻을 기리는 것으로 귀결된다. 이곳 척야산은 그가 일본 경찰에 체포될 때까지 3년간 숨어 지낸 곳이다.


동창만세운동 기념사업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김창묵(99) 척야산문화수목원 원장은 “동창마을은 면소재지도 아닌 시골에서 5개 마을 주민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른 특별한 곳”이라며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30년 전부터 이 수목원을 가꾸고 있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따로 받지 않는다. 수익을 내는 게 목적이 아니라 방문객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기 때문이다.

어록 조형물이 세워진 광장에서 조금 올라가면 김덕원 의사를 기리는 사당과 비석이 있고, 언덕에 청로각이라는 정자가 세워져 있다. 바로 아래에 내촌천(마을에서는 용호강이라 부른다)이 흐르고, 오른편으로 동창마을이 포근하게 펼쳐진다. 이곳부터 이어지는 길은 비장함보다 수목원 특유의 서정성으로 탐방객을 안내한다.

■짧은 발품으로 폭포 보고 자작나무숲으로

내촌면에는 발품을 많이 들이지 않고도 쏠쏠하게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또 있다. 와야리 백암산(1,099m) 서남쪽 기슭에 가령폭포가 숨어 있다. 50m 낭떠러지에서 흩뿌리듯 쏟아져 내리는 자태가 자못 웅장하다. 등산 동호인들이 찾으며 알려지기 시작한 폭포로 아직까지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폭포 주차장은 약 2km 아래 도로변에 있지만, 폭포 아래 연화사라는 작은 암자 부근에 대여섯 대를 주차할 공간이 있어 대개는 이곳에 차를 대고 걷는다. 약 500m 가파르지 않은 산길이니 등산을 즐기기 않는 사람이라도 부담 없이 걸을 만하다.

탐방객이 거의 없지만 등산로는 짜임새 있다. 입구의 짧은 다리를 건너면 일본잎갈나무 조림지다. 하늘로 쭉쭉 뻗은 침엽수 사이에 단풍나무와 자작나무가 섞여 있어 이제 곧 가을 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 이어지기 때문에 청량한 물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천천히 발길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정면에 새하얀 암벽이 나타나고,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폭포가 보인다. 경치가 아주 빼어난 것은 아니지만, 따가운 가을 햇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씻어주기에는 충분하다. 제법 규모가 큰데도 숨어 있는 옹달샘을 발견한 것처럼 반갑다.

가령폭포에서 인제 상남면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가면 군 경계 고갯마루에 ‘아홉사리재’라는 커다란 표석이 세워져 있고, 표석 뒤로 아담하게 자작나무숲이 형성돼 있다. 길가에서 만나는 뜻밖의 풍경이어서 더욱 반갑다. 다만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막기 위해 멧돼지 남하 방지용으로 철재 울타리를 둘러놓은 점이 조금 아쉽다.

아홉사리재에는 ‘아홉 살배기’와 관련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온다. 갓 결혼한 새신랑이 사흘째 되는 날 아흔아홉 굽이 도로 개설 공사에 끌려갔다가 돌아와 보니 태어난 아들이 아홉 살이 되어 있었다는 이야기와, 인제군 상남면에서 홍천군 내촌면으로 시집 온 아낙이 험한 산길을 도저히 넘을 수 없어 어린아이가 아홉 살이 된 해에야 처음으로 친정 나들이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홍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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