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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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이름으로

2021-09-04 (토) 김영미 SF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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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라는 단어가 품은 이미지는 거룩함, 사랑, 평화와 같은 고귀함을 지닌 것 같다. 그러나 종교가 극단주의와 배타성과 결부되어 왜곡될 때, 크고 작은 비참한 전쟁들로 나타난 것을 역사를 통해 볼 수 있다.

인간의 기초적인 선의지와 양심뿐만 아니라 관습에 기반한 사회적 정의도 종교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반대의 내란과 전쟁들이 종교를 명분으로 자행되는 이율배반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특히, 종교적 뿌리를 같이 두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첨예한 대립은 종교적 패권싸움으로 보인다.

사실 종교적인 전파는 사랑과 섬김으로 마음을 움직일 때만 비로소 가능한 것이지 총부리로 상대 종교를 진멸시키거나 강요나 압제로 마음까지 장악할 수 없다는 것은 기독교가 금지된 국가에서도 뜨겁게 신앙을 지키고 있는 지하 교회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최근 아프간 사태를 보며 과거 민족의 아픔이었던 6.25 전쟁의 참혹함도 다른 나라에선 그저 뉴스에 잠깐 등장하는 사건 사고처럼 스쳐 지나가는 일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이 되게 하는 휴전선이란 큰 상처를 남겨주었고 수많은 전쟁고아와 결손가정, 전쟁의 트라우마는 대를 이어 계속되고 있다. 오로지 생존에 필사적이었던 전후세대의 부모들, 사랑받지 못한 부모들로 인한 그 상처와 아픔은 치유되지 못한 채 가정이란 단위로 대물림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문화 자체가 가부장적이고 표현하지 않는 근엄한 아버지상을 미덕으로 했던 점도 있지만 애정을 기반으로 한 가정 내에서의 전쟁 트라우마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부모와의 관계에서 적절한 사랑과 지지를 받지 못한 상처들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저 먹이고 입히면 되었던 시절의 부모들에겐 자녀의 마음과 눈빛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었음은 인정하더라도, 최근 가정 내 부부관계 부모 자녀관계의 역학에서 부모의 부모들 즉 전쟁세대들이 끼친 부정적인 영향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프간 사태의 난민들을 대하는 우리는 더욱 큰 긍휼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이 가진 전쟁의 상처와 트라우마까지 잘 보듬는 노력이 함께 해야 그 이후의 세대들까지 제대로 된 따뜻한 가정을 누리게 될 것이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당했던 학대, 고통, 상처들을 인간애라는 이름으로 잘 감싸야 할 것이다.

<김영미 SF 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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