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기간은 거의 반의반으로 줄었다. 행사 규모는 이보다 더 심하게 깎였다. 수백 수천 명의 인파가 운집했던 행사들이 속속 취소됐다. 겨우 있다 해도 온라인 행사로 대체되거나 현장입장 가능관객이 49명까지로 제한됐다. 게다가 코로나19 PCR(유전자 증폭) 검사 결과 음성 확인서가 있어야 입장이 허용됐다.
지난 12일과 13일 이틀간 백담사가 있는 강원도 인제군 하늘내린센터에서 열린 제23회 만해축전은 이런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코로나19와 델타변이 때문이다. 현장을 취재한 매체들도 확 줄었고 관련 보도라야 대개는 축전 같지 않은 축전 분위기를 담은 것이었다.
그래도 감동뉴스는 있었다. 제25회 만해대상 수상자들, 특히 평화대상 수상자와 실천대상 공동수상자들의 보살행이다. 만해대상은 일제하 선지식이자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만해 한용운 대선사(1879∼1944년)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상으로 만해축전보다 2년 먼저 시작됐다.
올해 수상자들의 삶을 두고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12일 시상식(사진)에서 “하늘과 땅을 돌아보아 조금도 부끄럽지 않을 옳은 일이라고 하면 용감하게 그 일을 하여라. 비록 그 길이 가시밭이라도 참고 가거라. 그 일이 칼날에 올라서는 일이라도 피하지 말라고 강조했던 만해 대선사의 올곧은 지조가 바로 수상자 여러분의 삶에서 구현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라고 극찬했다.
연로한데다 코로나19 때문에 시상식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지만 평화대상을 단독수상한 세계적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 다니엘 바렌보임의 삶이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아르헨티나의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52년 부모를 따라 신생국 이스라엘로 이주한다. 한국전, 중공의 티벳강점 등 바깥사정은 차치하더라도 이스라엘 자체가 불안한 화약고였음에도 그의 부모들이 비교적 풍요롭고 안정적이었던 아르헨티나를 떠나 이스라엘로 이주한 걸 보면 그 가문의 유태인 정체성은 매우 확고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선민의식 대신 평화공존을 택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유럽 무대에서 지휘자 겸 피아니스트로 인정받은 그는 이스라엘인 팔레스타인인 아랍인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등 음악을 통한 평화공존운동에 앞장서왔다.
실천대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된 자제공덕회 이사장 보각 스님은 1970년대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조계종 1호 스님이다. 1985년부터 2019년 정년퇴임 때까지 중앙승가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길러낸 제자만 약 1,000명이다. 스님은 특히 법문사례금, 교수월급, 원고료, 인세 등을 모아 30여년간 근 30억원을 보시했다고 한다. 현재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자제공덕회는 노인 장애인 노스님 등 400명을 돌보고 있다.
실천대상 공동수상자인 ‘안나의 집’ 대표 김하종 신부(본명 빈첸시오 보르도)는 이탈리아 출신이다. 1990년 한국에 온 그는 1990년대 후반 IMF 직후 성남지역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것으로 ‘안나의 집’을 시작했다. 코로나 이전에는 하루에 500끼정도였으나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일부 봉사단체들이 손을 떼는 바람에 식사준비량이 하루 200끼정도 늘었다고 한다. 그를 인터뷰한 조선일보에 따르면 그의 지론은 “불쌍해서 밥 준다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형제이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라 한다.
한편 문예대상 공동수상자인 오정희 소설가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귀감이 될 만한 창작활동이 높은 평가를 받았고,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로잔 발레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상하는 국위선양 등에 힘입어 문예대상 공동수상자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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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