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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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먹다’

2021-06-15 (화) 박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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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시장 시계탑이 내려다보고 있는 사거리, 정오, 튀김 천막 내외가 점심상을 받는데
다붓하게 마주 앉아서 <시골밥집> 된장찌개를 놓고 흰밥을 먹는데
된장 한 그릇에 들어가는 두 개의 숟가락이 서로의 입속에 깊숙이 혀를 밀어넣듯 서로를 먹이는데
길 위에서 먹는 밥이 달고도 달아 서로를 먹여주는 것이 달고도 달아
아, 먹는 일 장엄하다
펑펑 지구 어딘가에서는 산수유 피고
노란 꽃가루가 토핑처럼 뿌려지는
시장(市場)을 퍼먹는데
입으로 막 피어나는 봄을 밀어넣는데
빨간 입술이 오물오물 목젖이 꿀꺽, 신(神)들의 만찬이다 뒤엉킨 꽃이다
야채튀김 사러 왔다가 남의 집 꽃밭에 들어선 듯 미안하다
안 되겠다 이러다가 방해되겠다
시장 한 바퀴 돌고 오면 이들의 애무가 끝났을 것이니
이들이 피워올린 꽃 한 다발 사가지고
아내와 딸 아들 모여 앉아서 내가 본 꽃 이야기 해줘야겠다
매일매일 꽃 먹으며 사는 그 느낌을
먼저 떠먹이고 한 숟갈 받아먹고 싶다

박형권 ‘꽃을 먹다’

야채 튀김 사러 오셨다가 시장 한 바퀴 돌고 오셨쥬? 얼핏 그림자 보았지만 모른 척 했쥬. 종일 기름내 맡다 보면 머리도 아프고, 손도 데고, 다리도 붜요. 내외 앉아서 배달 점심 먹는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쥬. 첨엔 길갓밥 먹는 거 남부끄러웠지만 이걸로 애들 가르치고 먹고 살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밥이 하늘이라지유? 꽃도 거름 밥에 봄비 국 마셔야 예쁘게 피잖유? 야채 튀김 만 원어치유? 기다려 줬으니 고구마튀김 몇 개 더 넣었슈. 반칠환 [시인]

<박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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