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방팔방이 발 아래…LA의 지붕 ‘볼디’

2021-05-28 (금)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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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가이드 Mt. Baldy ( 10,064’) West Course

사방팔방이 발 아래…LA의 지붕 ‘볼디’

등산중에 뒤로 돌아본 San Antonio Canyon.

사방팔방이 발 아래…LA의 지붕 ‘볼디’

West Baldy의 기슭을 지나는 등산로.


사방팔방이 발 아래…LA의 지붕 ‘볼디’

고도 10,064’에 이르는 정상의 풍경.


해발고도 10,000‘가 넘는 우뚝한 산으로서, 샌게브리얼산맥의 최고봉이자, 우리 남가주의 3대 거봉의 하나이고, 또 “LA 의 지붕”으로도 일컬어지는 Mt. Baldy! 이 Mt. Baldy 를 가장 Baldy 답게 제대로 보고 제대로 느끼게 해주는 위엄과 법도가 있는 루트, 샛길이나 샛문을 통해 잽싸게 비집고 들어가는 기습적인 면대나 비공식적인 방문이 아니고, 격식이 있는 제대로 된 절차와 통로를 통해, Mt. Baldy 라는 걸출한 성상을 알현하는 공식적인 예방에 비유해 볼 수 있을 루트가, 바로 이 West Course 이다.

Baldy Village 의 Visitor Center(4183‘)부근에서 시작하여, Bear Flats(5580’)을 경유, Mt. Baldy 정상(10064’)까지 편도 6.5마일의 거리에 순등반고도가 5881‘ 인 짱짱한 산행길로 강인한 체력과 인내력이 필요한 고급코스라고 할 수 있겠는데, 대개는 늦어도 아침 7시 이전에 등산을 시작해야 정오 전에 정상에 설 수 있으니, 왕복산행에 적어도 10시간쯤은 걸릴 것으로 예상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125년전인 1899년에 이 산 정상에 천문대를 건설하려 했던 Dr. B. H. Fairchild 와 Fred Dell 에 의해, Mt. Baldy 를 오르는 최초의 산길로 개설되었다는 이 코스는, 매우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으니, 즉 Mt. Baldy Trail, Baldy Trail, Old Mt. Baldy Trail, Bear Canyon Trail, Bear Flats Trail, Bear Ridge Trail, Village Trail, “No-Nonsense Trail”, West Course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이름이야 어쨌든 이 Mt. Baldy Trail 이야말로 볼디를 오르는 트레일로는 가장 빼어난 아름다운 코스라고 할 수 있고, 이는 Mt. San Jacinto 의 Deer Springs Trail 이나 Mt. San Gorgonio 의 Vivian Creek Trail 에 견줄 수 있는 코스라고 할만하다. 굳이 화려한 미사여구를 빌어 보자면, “아름다움이란 어디에 있는가? 나의 모든 의지를 모아 노력하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그런 곳에 있노라” 는 짜라투스트라의 말이 떠 올려지는 산길이다.

시원하고 운치있는 참나무숲그늘과 소나무숲그늘이 있는가 하면, 작렬하는 햇볕을 그대로 견뎌야 하는 가파른 가시밭길이 있고, 맑은 물줄기가 있는 아담한 초원이 있는가 하면, 아스라한 절벽 사이에 놓인 외나무다리 같은 가슴 떨리는 용의 등뼈구간도 있다. 이마에서 땀이 뚝뚝 떨어지는 힘든 급경사길이 있는가 하면, 그 땀을 말끔히 닦아주는 상쾌한 바람의 산책길이 있고, 가까이로는 유장한 캐년들의 푸르름이 눈을 시원케 하는가 하면, 동서남북 저만큼 멀리로는 귀에 익은 이름의 수많은 산과 산줄기들이 어설픈 산꾼의 마음을 설레게도 한다.

또 한가지 빼놓을 수 없는 이 코스의 두드러진 특징은, 고도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군의 뚜렷함이다. Incense Cedar 가 드문드문 섞인 참나무숲에서 시작하여, 푸르고 무성한 넓은 고사리밭을 지나면, 빽빽하게 우거진 Manzanita 와 Whitethorn 이 길을 막는 비탈이 나오고, 다시 싱그러운 Jeffrey Pine 지대를 거쳐, 수중귀족과 같은 Lodgepole Pine 숲을 지나게 되며, 마지막으로는 고산증으로 시달리는 때문인지 겨우 난장이로 자라나고 있는 소나무밭까지를 두루 분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

가는 길

Freeway 210 을 타고 동쪽으로 가다가, Claremont 시의 Baseline Road 의 출구로 나온다. Baseline에서 좌회전하여 한 블록을 가면, Padua Ave 가 되고 여기서 우회전하여 북쪽으로 1.7마일을 가면 신호등이 있는 Mt. Baldy Road 가 되는데, 우측으로 이 길을 따라 7.2마일을 가면 Mt. Baldy Village 에 이른다. 왼쪽으로 Bear Canyon Dr 가 있는 곳을 찾으면 되는데, 오른쪽으로 있는 Mt. Baldy Lodge 라는 레스토랑이 있는 곳의 앞이고, Mt. Baldy Village Church 가 있는 곳이다. 교회의 주차장이 아닌 Visitor Center인근의 도로변 적당한 곳에 안전하게 주차한다. Adventure Pass 를 잘 걸어 놓는다.

등산코스

구불구불한 좁은 주택가의 길인 Bear Canyon Dr 를 따라 북쪽으로 0.45마일을 올라가면 물이 졸졸 흐르는 Bear Canyon 의 West Fork 을 건너게 된다. 등산로입구임을 알려주는 이정판이 서 있다. 여기서 부터는 꽤 가파른 지그재그길이다. 사시사철 흐르는 물이 있어서인지 Bear Canyon 을 따라 특히 Oak Tree 들이 울창하여 등산길의 운치가 그만이다. 계곡의 비탈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보일듯 말듯 은밀히 자리를 잡고있는 캐빈들이 있는 지역을 벗어나면, San Antonio Canyon 의 하류지역과 Claremont와Upland일 도시의 전망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등산에 나선지 대략 1시간이 경과할 무렵에는 짙은 참나무숲 그늘이 끝나며, West Fork 의 작은 물줄기가 있고, 고사리가 우거진 꽤넓은 촉촉한 빈터에 이르게 된다. Bear Flats 이다. 잠시 숨을 고르기에 마땅한 곳이다. 이 이정표에서 왼쪽으로 난 발자취를 따라가면 거의 지워져 가고있는 희미한 트레일을 통해 Lookout Mountain(6812‘)에 이르게 되지만, 우리는 그냥 직진하여 나아간다.

여기서부터 약 1시간 정도는 전혀 그늘이 없이 Whitethorn 과 Manzanita 일색인 말 그대로 형극의 길을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올라가야 한다. 이 West Course 의 첫 번째 시련인 셈이다. 고도가 높아 갈수록 남쪽으론 San Antonio Canyon 과 Ontario Ridge 가, 동쪽으로는 Icehouse Canyon 이 한눈에 굽어 보인다.

이윽고 소나무가 한 두 그루씩 나타나기 시작하고 곧이어 등산로 왼쪽으로 사람의 키보다 높은 두 개의 날카롭게 각이 진 바위가 야무진 경계병인 듯 쌍으로 서 있다. Twin Rocks 라고 불리는 바위이다. 대개의 등산객들은 이곳 주변의 소나무 그늘에서 걸음을 멈추고 땀도 식히고 물도 마시며 주변의 전망을 즐긴다.

다시 여기서부터 약 1시간 정도는 Jeffrey Pine 이 위주인 소나무숲과 큰 바위들이 어우러지는, 그늘이 있지만 계속 오르막이라 숨이 차는 구간을 지나게 되는데, 왼쪽으로는 현기증이 날만큼 급경사로 내려가는 Cattle Canyon 이 굽어보이기도 한다.

길은 다시 하나의 완만한 봉우리에 오르고, 다시 세 번째 봉우리를 향해 약간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부드러운 오름세로 나아가는데, 이젠 바위들은 거의 없고 소나무 숲이 무성하다. 가끔씩 키가 큰 Douglas Fir들이 섞여있으나 Jeffrey Pine 이 주종인 소나무 숲의 그늘을 지나게 되므로 공기도 향긋하고 운치도 그만이다. 오른쪽으로 멀리는 Ontario Ridge 의 산줄기가 선명하고 발 아래로는 Stead Canyon 의 푸르름이 싱그럽다.

등산을 시작한지 3시간이 좀 넘을 무렵에는 약 5마일지점의 세번째의 둥그스럼한 높은 봉우리에 올라서게 된다. 해발고도가 9200‘ 인 곳으로 사방으로 전망이 빼어나게 좋은데, 이미 백두산 정상보다 높은 곳에 오른 것이다.

앞쪽으로 시야가 툭 터지며, 북쪽 멀리로는 West Baldy 정상에 이어 그 오른쪽으로 Baldy 정상의 모습이, 두 개의 둥그스럼한 초가집의 지붕이 겹쳐진 듯한 부드러운 곡선으로 나타나고, 바로 눈앞으로는 누군가가 “The Narrows - Razorback Saddle” 이라고 표현한 용의 등뼈같은 좁다란 줄기가, 왼쪽의 Cattle Canyon 과 오른쪽의 Goode Canyon 을 가르며, 구붓하게 드리워져 있다. 볼디왕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관문으로 외나무다리를 연상시키는데, 바람이 거칠게 불어대면 월경을 거부한다는 뜻으로, 그렇지 않으면 귀빈방문으로 환영하는 것으로 해석해 보고 싶다. 아스라한 양옆을 볼 여유가 없이, 다소 긴장되고 조심스런 걸음걸음으로 똑바로 앞과 발밑만을 보며 걷게 함은, 국왕을 알현하려는 빈객에 대한 의도된 길들이기는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이 좁다란 등뼈의 바로 왼쪽으로 떨어지는 비나 눈은 흐르고 흘러 San Gabriel River 가 되어 종국엔 Seal Beach 를 통해 태평양에 유입되어지는 여정을 그리게 되며, 바로 오른쪽으로 떨어지는 비와 눈은 마침내는 Santa Ana River 가 되어지고 종국엔 Huntington Beach 를 통해 태평양으로 유입되어지는 훨씬 더 긴 여정을 가게 되니, 이곳이 바로 글자 그대로의 ‘분수령’인 셈이다.

이제 이곳을 지나고 나면, 마치 양탄자를 깐듯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 펼쳐지는 가운데, 길 양편으로는 하얗게 빛나는 도골선풍의 Lodgepole Pine 들이 접빈행렬인 듯 굽이굽이 정렬해 있는듯한 모양새다. 주군을 찾아온 빈객에 대한 최대의 경의를 표하려, 완만하지만 길고 긴 궁중안 길을 촘촘히 늘어서서 극진히 안내하는 형국이다. 그러고 보니 등산로 주변의 풍경이 설사 파리에 있는 엘리제궁의 정원일지라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훨씬 정결하고 우아하다.

어쨌거나 그루그루, 나무나무, 한결같이 모두가 헌헌장부의 기상이요 요조숙녀의 아름다움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 Mt. West Baldy 는 세자가 머무는 궁이라고도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조선의 세자궁은 동쪽에 있다 하여 세자는 동궁마마로 불렸다 하니, 그렇게 따지면 이 볼디왕국의 세자는 서궁마마로 불림직한데, 험하기로 소문난 San Antonio Ridge가 바로 이 봉우리에서 이어져 내려가는 것을 감안하면, 특별히 험난한 여정의Iron Mountain 을 거치고 다시 위태로운 잔도와 같은 San Antonio Ridge 를 타고서 침투해 올 수도 있을, 적의 최정예 특공대로부터 부왕의 거처인 볼디궁을 지키는 최측근 방어요새로서의 역할을 겸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상상해본다.

드디어 Mt. West Baldy 와 Mt. Baldy 사이의 Saddle 에 이르른다. 바람이 유독 드세고 차갑다. 여차하면 군왕을 지켜내는 매서운 칼바람으로 순식간에 바뀔 수 있음을 시위하는 것일까?

여기서 부터는 절대지존의 성역이라서인지, 근위병이랄만한 큰 나무들은 없고 다만 난장이 내시인지 이니면 어린 동남동녀인지 모를 키작은 나무들이 여기저기 드문드문 서있을 뿐인데, 주봉으로 더욱 바짝 다가가면 그나마 나무라고는 단 하나도 없는 형국이다. 북경의 자금성에는, 혹시라도 황제를 시해하려는 자객이 성안에 들어오는 경우라도, 그가 은신할 수 있는 여지를 아예 없애기 위해 정전이나 침전의 주위는 단 한포기의 풀도 없는 넓은 광장만이 황량하게 조성되어 있는 것처럼, 이곳도 이 같은 보안상의 맥락에서 이렇게 꾸며진 것이라고 상상해 본다.

마침내, LA 의 지붕 용마루, Mt. Baldy 의 정상에 선다. 세상의 최고점에 선 듯 사방팔방이 다 발아래에 있고, 가깝고 먼 시야에 거칠 것이 없다. “SAN ANTONIO ‘MT. BALDY’ ELEV 10064’” 라고 선명히 각인된 채 땅에 박힌 동판은, 벼락불로 새겨놓은 하늘님과 땅님의 경계표지런가!

굵직한 동판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다섯시간 가까운 동안의 가파르면서도 길었던 이 루트로의 등산을 무사히 잘 견디고 정상에 서서 이렇게 온 세상을 굽어볼수 있도록 허락해준 것에 대해, 천지의 신령에, 그리고 Mt. Baldy 에, 고두로 경의를 드린다.

하산은, 바삐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쉬고난 후, 차분하게 하여 사고가 없도록 끝까지 유념하자. 올라온 길을 되짚어 내려가되, 혹 차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Baldy Bowl Trail 을 통해 Manker Flats 쪽으로 내려가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겠다. 이 경우, 2마일의 거리를 줄일 수 있기는 하나, 하산길의 보행의 편안함이나 전후좌우의 전망은 지금 올라 온 Bear Canyon Trail 이 월등히 낫고 보니, 선택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310-259-6022
http://blog.daum.net/yosanyosooov

<정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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