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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매덕스’ 류현진과 그레인키…제구+볼배합

2021-05-2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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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산 9이닝당 볼넷허용·탈삼진/볼넷 비율·WHIP 수치 ‘닮은꼴’

▶ 평균 시속 143∼145㎞ ‘느린 직구’에도 정교함으로 에이스 노릇

‘이 시대 매덕스’ 류현진과 그레인키…제구+볼배합

MLB 탬파베이 상대로 6⅔이닝 2실점 역투한 류현진. [로이터]

‘컨트롤의 마법사’ 그레그 매덕스(55)는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이젠 신화가 된 인물이다.

로저 클레먼스,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스, 존 스몰츠, 커트 실링 등 빠른 볼을 앞세운 강속구 투수들의 전성시대에 매덕스는 뱀처럼 꿈틀대는 현란한 투심 패스트볼과 정교한 제구로 야구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빅리그에서 뛴 23년간 통산 355승 227패, 평균자책점 3.16을 남긴 매덕스는 4차례 사이영상을 받고 4번 평균자책점 1위를 차지했다.


18번이나 투수 골드 글러브를 낀 훌륭한 수비수인 매덕스는 2014년 미국기자협회의 투표에서 97.2%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앞선 세대보다 더 빠른 볼을 던지는 투수가 등장할 가능성은 커도 매덕스만큼 면도날 제구력을 뽐낼 투수가 다시 등장할 확률은 낮다는 시각이 빅리그에서 우세하다.

매덕스에 범접할 만한 현역 투수도 사실 없다. 다만, 매덕스처럼 제구력 하나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 시대의 매덕스’는 있다.

오른손 투수로는 잭 그레인키(38·휴스턴 애스트로스), 왼손 투수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에이스 류현진(34)이 대표적이다. 둘은 2013∼2015년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류현진은 2019년 다저스 시절 완봉승을 합작한 포수 러셀 마틴의 한마디 덕분에 매덕스급으로 올라섰다.

매덕스의 공을 받아 본 마틴은 류현진의 투구가 매덕스를 떠올리게 한다며 극찬했다.

야구 통계사이트 베이스볼서번트를 보면, 지난해 빅리그 투수 104명의 포심 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93마일(시속 149.6㎞)을 찍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더스틴 메이가 99.1마일(159㎞)로 1위, 제이컵 디그롬(뉴욕 메츠)이 98.6마일(158.6㎞)로 2위를 달렸다.

류현진과 그레인키의 빠른 볼 평균 구속은 이들보다 한참 밀린다.

24일 현재 류현진의 2021년 포심 패스트볼의 평균 구속은 시속 약 145㎞, 그레인키의 빠른 볼은 이보다도 느린 시속 143㎞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둘은 토론토의 1선발, 휴스턴의 에이스로 손색없는 성적을 낸다. 팔색조 볼 배합과 칼날 제구력으로 구속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한다.

류현진과 그레인키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비교 사이트를 보면, 둘의 통산 성적에서 닮은 부분이 적지 않다.

통산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 9이닝당 탈삼진, 9이닝당 볼넷 허용, 탈삼진을 볼넷으로 나눈 비율 등에서 둘은 거의 같은 수치를 냈다.

삼진을 많이 낚고 볼넷을 적게 주는 똑같은 패턴이다. 볼넷 허용이 적다는 건 제구 능력이 좋아 타자를 범타로 잘 유인한다는 뜻과 맥이 닿는다.

류현진은 빠른 볼, 체인지업, 컷 패스트볼, 커브를 주로 던진다. 그레인키는 빠른 볼, 체인지업, 커브,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는다.

류현진은 속구와 비슷한 속도의 컷 패스트볼, 이보다 느린 체인지업으로 완급을 조절한다.

그레인키의 속구,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구속 차는 확연하지 않다. 대신 느린 커브를 효과적으로 던진다.

송재우 메이저리그 전문 해설위원은 “그레인키는 빅리그 우완 투수 중 가장 제구가 좋은 투수”라며 “모든 오른손 투수가 우타자 바깥쪽 슬라이더, 왼손 투수가 좌타자 바깥쪽 슬라이더로 볼을 배합할 때 그레인키는 우타자 몸쪽에 백도어 슬라이더를 던진, 파격적인 볼 배합의 선두 주자였다”고 평했다.

송 위원은 이어 “류현진도 어깨와 팔꿈치를 수술하고 돌아온 다음부터 왼손 타자의 몸쪽에 마치 슬라이더를 던지듯 체인지업을 뿌려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두 투수가 정형화한 투구 패턴을 깨고 저런 볼을 결정구로 던질 수 있는 건 제구 능력에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을 곁들였다.

언제든 스트라이크 존 원하는 곳에 ‘핀포인트’ 제구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은 두 선수의 남다른 ‘손끝 감각’에 기인한다고 송 위원은 봤다.

송 위원이 소개한 일화에 따르면, 그레인키는 마이너리그에 있을 때 동료와 느린 커브 구속 맞히기 내기를 했다고 한다.

가령 동료가 ‘68마일’이라고 외치면 그레인키는 그것에 맞게 속도를 조절해 커브를 던졌다.

손가락 감각이 예민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체인지업, 컷 패스트볼 등을 자신의 독창적 무기로 키워낸 류현진의 손가락 감각도 이 바닥에서 알아준다.

송 위원은 마지막으로 “류현진과 그레인키 모두 다양한 구종을 스트라이크 존 구석구석에 정확하게 꽂기 때문에 타자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한다”며 “타자들이 다음엔 어떤 공이 들어올까 고민하던 찰나에 던진 직구의 체감 속도가 그래서 더 빠르게 느껴질 수 있다”고 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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