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2021-05-1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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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 (41) 제주마 (하)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망아지들은 갓 태어나자마자 천방지축 뛰어다닌다. 망아지가 뒷발차기 연습을 하며 제멋대로 뛰어다니자 어미 말이 바짝 뒤따르며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보호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갓 태어난 적다월라(얼루기) 망아지가 제멋대로 뛰어다니고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사람에게 개처럼 친숙하고 호기심이 많은 제주마의 눈빛을 보면 지능이 높고 생각을 많이 하는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짝짓기하기 전에 수말(종마, stallion)이 암말(왼쪽) 에게 애정 표시를 하고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수말(종부말, 씨수말)이 발정이 온 암말(왼쪽)의 냄새(페르몬)를 맡고 성적인 흥분으로 머리를 쳐들고 윗입술을 치켜 올리는 플레멘(Flehmen) 동작을 보이고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암말(오른쪽)이 발정난 것을 확인한 종마가 성적인 흥분으로 머리를 쳐들고 윗입술을 치켜 올리는 동작인 플레멘을 보이고 있다. 19번 암말은 교미 준비를 하고 서 있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종마와 짝짓기하는 암말을 시샘하는 다른 암말들이 교미 중인 말들에게 접근해서 훼방을 놓으려 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갓 태어난 망아지들을 지키는 어미 말들과 같은 모색의 친구들이 쉬고 있는 망아지들 곁을 떠나지 않고 모여 있다. 사람들도 인종별로 모여 살듯이 제주마들도 같은 모색들끼리는 서로 다정하게 그루밍하며 시간을 보낸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같은 모색의 제주마끼리 이빨로 털고르기(grooming)를 하는 다정한 모습. 제주마들은 서로를 입으로 다듬어주며 시간을 보낸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유마 모색(毛色) 어미말의 젖을 빨고 있는 망아지. 제주마 어미말 다리 하단의 검은색은 야생마의 대표적인 종인 중앙아시아의 야생마 Przewalski’s horse의 만선(countershading dorsals)과 흡사하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갓 태어난 망아지가 피로를 느끼며 낮잠을 즐기고 있을 때 어미말이 깨운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갓 태어난 가라말(까만 black) 모색의 망아지. 제주마에서 가라말이 인기가 높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언제 분만할지 모르는 백총 암말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다. 제주마의 특징은 길고 아름다운 갈기털을 빼놓을 수 없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백총 두마리가 몸에 붙어사는 진드기가 못 견디게 가려워서 나무에 비비는 모습. 진드기는 발목, 갈기털, 겨드랑이, 귓속 등 제주마의 온몸에 붙어 기생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얄미운 까마귀들이 백총의 꼬리에서 말총을 뜯어내고 있다. 말총은 부드럽고 질겨서 까마귀들이 종종 말총으로 둥지를 만든다. 영리한 까마귀들은 높은 나무 꼭대기나 다른 동물들이 침입하기 어려운 곳을 선택해 만든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백총의 고삐를 제주 전통의 예쁜 색깔의 녹대로 씌워 놨다. 개처럼 목줄로 매어서 말을 일정 거리 주위만 풀을 뜯도록 하는 것을 계목(繫牧)이라고 한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석양을 뒤로 하고 제주마가 한라산 초원 제주마방목지에서 풀을 먹고있다. 해질녁이나 해가 뜰 때 말은 풀을 많이 먹는다. [Photo ⓒ 2021 Hyungwon Kang]

새로운 탄생과 짝짓기… 제주마의 경사스러운 봄

제주섬 천지에 꽃과 초록이 한창인 매년 이맘때는 제주마(濟州馬)에게는 생명의 탄생과 잉태의 축복이 겹치는 가장 경사스러운 순간의 연속이다.

반짝거리는 까만 구두를 신은 것처럼 앙증맞은 말굽에 다양한 모색을 한, 강아지만큼이나 깜찍하고 귀여운 망아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눈부신 계절에 태어난다. 아직은 연약하지만 이 꺽다리 망아지들은 1년 가까이 어미의 뱃속에서 접고 있던 긴 다리를 풀기라도 하는 양, 바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면서 뒷발차기를 연습한다.

봄에 계절번식을 하는 제주마는 340여 일의 임신기간을 거쳐 망아지를 분만한 후 다시 10여 일만에 20여 일간의 발정기간이라는, 마치 달력과도 같은 자연의 규칙을 갖고 어김없이 매년 망아지를 생산한다. 제주도 생태계 기후에 오랫동안 적응해 온 토종말이다. “매년 같은 날짜에 새끼를 분만하는 말도 있다”고 수십년간 제주마를 연구하고 진료해온 수의사 장덕지 말박사는 말한다.


갓 태어난 망아지들은 태어나자마자 몇 시간 만에 뛰어다니며 몸을 풀다가 어미젖을 찔끔찔끔 빨기도 하고 이어서 바로 풀을 뜯어먹는다. 소와는 달리 말의 모유 생산은 많지 않기 때문에 망아지는 젖을 오래 빨지 못한다. 어미 말은 철저하게 망아지의 동선을 관리하며 다른 말들이 망아지를 해치지 못하게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보호한다.

거의 멸종 위기에 있었던 제주마는 지난 1986년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되면서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에서 관리를 하기 시작해 개체수가 이제는 안전한 수준에 올랐다.

제주마는 다양한 모색(毛色)으로 그동안 번식해 왔는데, 가장 인기 좋고 선호하는 모색은 가라말(까만색, black)이다. 가라(흑색) 중에도 이마에 하얀 반점(patch)과 4발목에 하얀색 양말을 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말을 오명마(五明馬)라고 하는데 제주마 중에 가장 으뜸으로 친다.

제주마 중에 두 번째로 선호하는 모색은 청총(검정과 흰색, Black-Gray)이며, 세 번째로는 적다마(赤多, 붉은색, Chestnut), 네 번째가 월라(얼루기), 그리고 다섯 번째는 백총(白)이다. 하얀색 모색과 까만 입술의 말을 보통 백마라고 잘못 부르는데 정확한 명칭은 ‘백총’이다. 백마라고 불리는 하얀 모색과 하얀 입술을 갖고 있는 말을 쉽게 볼 수 없는 이유는, 유전학적으로 오래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주에서는 얼룩이 모색을 얼루기라고 소리 나는 대로 부른다.

제주마의 모색(毛色)은 일반적으로 밤색, 적갈색, 회색, 흑색, 담황색, 얼룩색 등이 있는데, 모색의 명칭 가운데 일부는 몽고어로부터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제주마 이름 중에는 가라말(흑색)은 6종류의 모색, 총마(회색)는 8 종류의 모색, 누륵총, 청총, 적다마(율모마)는 6 종류의 모색, 적다월라(얼루기)와 가라월라(얼루기)는 10종류의 월라말 모색, 모시적다, 구렁적다(타모), 유마(갈색), 율모(적다마), 다모(갈색), 부루(점박이), 고라(암황갈색), 공골마 (크림색), 그리고 색깔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모색 중 자흘, 거흘 등을 포함해서 제주마의 모색은 많게는 40~50가지로 세분화 할 수 있다.

제주마에 이렇게 다양한 모색이 있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의 진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혼합된 건강한 유전체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장덕지 말박사는 말한다.

육지의 전통 소싸움처럼 제주에는 수말 싸움 전통이 있었다. 발정난 암말 한 마리를 세워놓고 두 수말이 싸우는 이 말싸움은 1997년 시작한 제주들불축제에서부터 공식적인 행사로 2~3일간 진행하면서 일반인들에게도 많은 인기를 모았는데, 2008년 동물보호법이 시행되면서 말싸움이 중단되었다.


탐라국이 고려로 흡수되면서 제주마가 본토로 많이 보내졌는데, 몽골의 100년간의 지배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말 공급 과정이 제도화되었다. 중앙집권체제가 정립된 조선시대에 와서는 제주마를 포함해서 국가에서 말마(馬) 자가 들어간 역(驛)을 지방 곳곳에 30리(12km)마다 개설해서 마필(馬匹)을 유지하며, 벼슬아치들의 이동과 외국 사신의 방문 때 말을 공급/교환하던 인프라가 구축되었다. 지금도 기차역을 표기할 때는 말마(馬) 자가 들어간 역(驛)자를 쓴다.

제주에서는 규칙적으로 중앙정부에 말을 상납하는 부담이 생기면서, 제주에서 말을 공급하던 목장주들이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 “임금님이 타는 큰 말은 모두 김만일의 목장에서 잡아온 것입니다”라고 김만일(金萬鎰 1550-1632)이 상납한 말에 대한 기록이 있다.

헌마공신(獻馬功臣) 김만일 집안에서는 일종의 민관 협동목장에서 오랫동안 준마(駿馬)를 생산해냈는데, 제주도에서 당시 가장 많은 말을 기르고 좋은 말을 국가에 바쳤던 김만일은 조정에서 관리들이 내려와서 우수한 말을 무분별하게 뽑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종모마(種牡馬)의 귀를 잘라버리거나 눈을 애꾸로 볼품없이 만들어 섬 밖으로 말을 데리고 나가지 못하게 하는 극단적인 노력으로 우수말 혈통을 제주에 보존했다고 한다.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우리·문화·역사 Visual History & Culture of Korea 전체 프로젝트 모음은 다음의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www.kang.org/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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