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멘토
2021-03-03 (수)
박희례 (한의대 교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마을을 구성하고 사회를 이루어 나간다. 미국에 이민 온 후 3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워낙 땅덩어리가 크고 한인이 적게 사는 이곳에, 주변에 멘토 역할을 해줄 만한 어른들이 안계시고, 내가 가장 연장자가 되었다. 어른들께 보고 배워, 한민족 고유의 좋은 전통을 이어가야 하는데, 인간으로서 해야 하는 도리를 종종 잊고 사는 게 안타깝다.
결혼하고 분가하여 멀리 사는 자녀들에게도 우리의 전통을 알려주고 지키라고 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설날과 추석에 지내는 차례는 우리집에서 한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큰아들네 집에서 가능하면 꼭 함께 지낸다. 일하는 며느리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차례 음식은 모두 준비해서 가져간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글도 모르던 큰며느리도 차례 때 절도 따라하고 이제는 한국말도 잘한다. 어린 손자, 손녀들에게도 한국말을 가르치니 아주 예쁘다.
최근에 여고 총동창회에 가입하여 칠팔십대 대선배님들과 카톡으로 소통하고 있다. 그분들을 멘토로 삼아 간접적으로나마 많은 것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팬데믹으로 직접 뵙지는 못하지만, 1950년대에 유학 오셔서 지금까지도 한국의 전통을 잊지 않고 열정적으로 계승하고 계신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낀다. 가까이에 계시면 자주 뵙고 의논도 드리고 충고도 해주십사 부탁을 드릴 텐데 멀리 계시니 모든 것이 아쉽다. 선배님들은 백신 접종을 2차까지 끝내셨다고, 2주간의 자가 격리가 끝나면 샌프란시스코에서 후배들에게 맛있는 것 사주신다고 행복한 기대감에 부풀어 있으시다. 연세가 높으셔도 아직도 마음은 여고 시절 교정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예전에 직접 연주하셨던 아름답고 웅장한 클래식, 주로 음악과 꽃들에 대한 대화는 언제나 기다려지는 주제이다. 나이가 더 들어도, 이 선배님들처럼 아름다운 행동과 적극적인 사고로 활발하게 살고 싶다.
일년 중 가장 밝다는 정월 대보름 전날인 열나흗날 달이 휘영청 어둠을 밝히고 있다. 어릴 때 정월 대보름날, 오빠들과 함께 놀던 쥐불놀이, 부럼 깨물기, 온가족이 함께 먹은 오곡밥과 귀밝이술, 잣으로 밝히던 불 등등, 모두 다 그리운 우리의 전통이다.
<박희례 (한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