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겨울 폭풍

2021-02-03 (수) 12:00:00 박희례 (한의대 교수)
크게 작게
10여년 만에 돌아온 겨울 폭풍이다. 2주 전 시속 80마일의 강풍이 불어치더니, 어젯밤에는 밤새 억수같이 내리는 비 소리에 잠을 설쳤다. 작년 8월 산타크루즈 카운티 빅 베이신(Big Basin)산에서 일어난 산불로 인해 산사태가 우려된다고, 그 지역 모든 주민들에게 대피명령이 내려졌다. 다행히 우리 집은 시내쪽에 있어서 피해는 없지만 이 추운 겨울에 시민회관이나 학교 체육관에서 지내야 하는 사람들이 안쓰럽다. 지난 가을에는 비가 유난히 적어 올해 가뭄이 걱정되었지만, 이틀째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해, 집 앞 인도까지 찰랑찰랑 강물이 흐르듯 강한 물살로 흘러가는 빗물을 보니 홍수가 날까 걱정이다.

폭우가 쏟아지면 예전에 펜실베니아에서 살 때의 기억이 난다.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서스키하나강이 윌키스베리 마을을 감싸고 돌아가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그곳은 봄여름에는 비가 많이 내렸고, 겨울에는 눈이 엄청 내렸다. 매년 봄이 되면, 높은 산에서 녹기 시작하는 눈녹은 물과 빗물이 합쳐져서 홍수 위기에 놓일 때가 많았다. 거기서도 홍수 때문에 대피명령이 자주 내려졌다. 우리는 아파트 옆의 강둑이 무너질까 무서워 자주 둑 위에 올라가서 수위를 살펴보며 언제쯤, 어디로 대피해야 할까를 의논하곤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물과 참 인연이 많은가 보다. 지금 살고 있는 거리 이름도 WATER STREET(물 거리)이니까.

이곳에 비가 내리면 시에라 네바다 산맥에는 항상 눈이 온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겨울에 스키를 타러 레이크 타호에 자주 갔다. 그곳에서 겨울 폭풍을 만나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많이 내렸고, 80번 고속도로에서는 중간에 내려 체인을 감고 가야만 경찰이 통과시켜 주었다. 어느 겨울날, 스키를 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체인도 준비하지 않은 우리 차가 미끄러지며 산쪽으로 높이 쌓아 놓은 눈 속에 박혀버렸다. 고속도로순찰대 차와 눈 치우는 차가 와서 2시간 만에 우리를 구해주었다. 난생 처음으로 경찰들에게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렸다.

이제는 일기예보에 겨울 폭풍이 온다고 하면 안전을 위해 집에서 지낸다. 산호세로 나가는 도로인 17번 고속도로가 막히는 일도 자주 생기니까.

<박희례 (한의대 교수)>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