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신년 시> 새해, 택배로 오다…윤석호 시인

2020-12-3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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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 새해, 택배로 오다…윤석호 시인

윤석호 시인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 회원)

택배가 왔다
보다 못해 새해가 배달됐다
차라리 홀가분하다

먹다 만 시간들
유통기한이 끝난 감정들을 싹 치우고
하얀 냉장고 속살 안으로 새 시간을 챙겨 넣는다

택배 속에 희망 같은 것은 없다
제때 챙겨 먹지 못해도
쉽게 상하지 않을 거라는 위로가 희망이다
씻고 다듬고 무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게 희망이다


시간은 아껴봤자 쓸데가 없다
필요할 때 딱 뚜껑을 따고 함께 나눠 마시면 된다
일회용 개별포장이 무리한 희망을 예방한다
사용 즉시 깔끔하게 과거 완료형 시제로 바뀌는 마음

때론 목이 메 삼키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소화할 수 없어 속앓이할 때도 있을 것이다
분주하게 모였다 정신없이 헤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남은 음식이 식탁에 가득할 때도 있을 것이다
시간에게 맡기면 된다

택배는 후불이 없다
우린 이미 나이 한 살을 결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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