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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블루에 빠진 자녀들 ‘마음 근육’ 키워 주세요”

2020-10-27 (화)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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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코로나 블루에 빠진 자녀들 ‘마음 근육’ 키워 주세요”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무기력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는 청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는데 인생을 자신감있게 살아가려면‘마음 근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제공]

“어린이ㆍ청소년 때는 인지ㆍ정서ㆍ사회성 등 가치관 형성 발달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진학이나 진로 선택 등 인생의 중요한 과업을 해 나가는 시기이기도 한 만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세심한 관심과 접근이 필요합니다.”

‘청소년 정신 건강 치료 전문가’인 김은주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김 교수는“청소년들이 입시와 학업 등에만 전념하다 보니 불안ㆍ우울 등 정서장애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틱장애 등 다양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청소년들의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디지털 기술을 정신의학에 접목한 프로그램 개발에 힘쓰고 있다. 가상현실(VR)을 이용한 소아청소년 집중력, 시험 불안, 사회성 훈련 등의 다양한 콘텐츠 제작, 챗봇을 이용한 정신건강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청소년들이 정신적인 문제가 많아지는데.


코로나19 장기화로 일상생활이 불확실해지면서 청소년들의 상담 건수가 크게 늘었다. 특히 외부 활동에 제약이 많아지면서 무기력과 불안감, 짜증 등을 호소하는 청소년이 많이 생겼다. 심지어 자해와 자살을 시도하는 어린이도 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부모들은 자녀들의 불안감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녀들이 호소하는 무기력과 불안감, 짜증 등은 스트레스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므로 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만 이렇다고 여겨 ‘너만 이상해’라고 몰아붙이면 안 된다. 또한 자녀에게 스트레스를 받는 감정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을 인지시켜 주고, 이런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게다가 요즘 코로나19가 지속되면서 자녀들이 학교를 자주 가지 않다 보니 생활 리듬이 깨진 소아ㆍ청소년도 많아졌다. 따라서 부모들은 자녀들이 기본적인 생활 규칙을 지킬 수 있도록 관심과 감독이 필요하다. 자녀들이 규칙적인 식사와 수면습관을 갖도록 지도하고, 사람이 드문 실외에서 적절히 활동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부모 스스로도 모범을 보이는 생활을 해야 한다. 특히 공부를 잘할 수 있다는 약을 자녀에게 먹이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보다는 자녀의 ‘마음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수능일이 며칠 남지 않아 수험생들의 정신 건강도 걱정되는데.

그렇다.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일이 불과 100일도 채 남지 않아 고교 3학년생이나 재수생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학교나 학원 등교 등이 중단되거나 입시 일정이나 전형 방식이 바뀌는 등 불확실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불안해하다 포기하려는 마음이 많이 커지게 된다. 수험생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도 마찬가지로 불안하고 힘들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또한 수능 시험에 대해 너무 생각하지 말고, 하루 하루 포기하지 않고 일상 계획을 지켜 가는 것이 중요하다. 대학 입시는 대부분 학생들이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자 인생의 한 과정인 만큼 결과에 연연하기보다 하루 하루 충실히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의 정신적인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나.


청소년의 정신 질환은 입시와 학업, 대인 관계에서 기인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집중력 장애, 틱장애, 시험 불안, 또래 관계 갈등 등 사회성 관련 문제가 많다. 이런 문제가 닥쳐도 청소년마다 대처하는 방식이 매우 다르다.

문제를 대처하는 능력이 바로 회복 탄력 능력에 기반한 ‘마음 근육’이다. 특히 요즘처럼 어려서부터 입시학원 등 외부 관리에 길들어진 아이는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전두엽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 전두엽은 청소년기와 초기 성인기에 고도로 발달되는데, 이 시기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성인이 되어서도 통제와 간섭에 익숙해져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계획을 짜거나 이를 실천하는 힘이 부족해진다.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 착안해 지난 2015년 강남세브란스병원에 ‘그릿(GRIT) 클리닉’을 열었다. 그릿(GRIT)이란 성장(Growth through), 관계성 (Relatedness), 내재 동기(Intrinsic motivation), 끈기(Tenacity)의 첫 글자를 합친 합성어이며, 자기 동기력, 자기 조절력, 대인 관계력을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성취 역량 인성 검사를 통해 자기 동기력, 자기 조절력, 대인 관계력 등 3가지 요인을 측정한다. 개인의 성취 역량에 따라 맞춤 교육 프로그램 및 생활습관 교정을 한다. 이를 통해 성취력ㆍ도전성ㆍ긍정성 등을 높일 수 있다. 그릿 클리닉을 통해 소아ㆍ청소년이 성취 역량을 높여 인생을 자신감 있게 살아갈 수 있는 밑바탕이 되는 ‘마음 근력’을 키워주고 있다.

그동안 그릿 클리닉은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 상담을 통해 이루어져 왔다.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비대면 상담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이에 따라 수년간 연구ㆍ개발하고 효과성에 대한 임상 시험을 거친 것이 바로 ‘가상학교’다. 스마트폰과 VR 장치를 기반으로 한 가상 현실 치료를 청소년에게 맞게 발전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그릿 훈련을 지속하게 하며 게임 중독 관련 콘텐츠, VR 집중력 및 사회성 훈련 콘텐츠를 개인 상담 치료의 보조적인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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